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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조커 Aug 16. 2020

내가 사표를 내지 못하는 이유

지금 가는 이 길의 끝은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비, 분노, 흥미 등 특별한 이슈가 생겼을 때 도전이라는 핑계를 앞세워 이직을 했다. 그 결과 40대가 되기도 전에 4번의 이직을 했고 얻은 것과 잃은 것도 극명하게 갈렸다.


사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도전'이라는 명분을 삼아 이직을 했지만 진짜 내 속마음은 '자존심'이었다. 숫자가 지배하는 첫 직장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 아닌 자존심을 그대로 두고 나왔다. 첫 직장과 같은 분야인 곳에서 그걸 찾는 순간이 오면 직장생활을 종결지으려 했다.


'전사 1등' 단지 바라는 건 그것뿐이었다. 내가 부임받은 지점이 전사 1등이 된다면 미련 없이 회사를 나오리라 다짐했다. 2019년 1월 지점장 발령을 받고 부임 첫날부터 FM(보험회사의 팀장 직책) 두 분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부임받은 지점에 2개의 팀이 있었다) 떠나는 사람을 굳이 붙잡고 싶지 않았다. 오죽하면 지점장 발령 첫날부터 나오지 않았으리라.

지점의 상황을 보니 출근 인원은 5명도 안되었으며 평균 연령은 67.6세였다. 지점의 에이스(2018년 지점 내 실적 1위)가 있었지만 역시 그만두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결국 떠나겠다던 FM 두 분과 에이스 중 FM 한 분만 남게 됐다. 남은 FM 한분은 팀장 역할을 수행할 의지도 열정도 없기에 그 점을 알아달라고 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1%의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곳에서 거의 매일 동반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소통하지 않은 성격 또한 조금은 변하게 된 소중한 자산을 얻었다.


출근 인원 5명 미만
평균 연령 67.6세

8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전사 1등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을 눈 앞에 두게 됐다. 2019년 9월 첫날 지점 목표의 100%를 달성할 것이며 한 달 내내 전사 1등에 랭크될 것이라는 순간이 눈 앞에 있었다. 그 분위기와 기세를 10-11-12월에도 이어갈 수 있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직장생활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내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첫날 100%를 달성하여 전사 1등이 되었지만, 회사로부터 지점이 영업소로 격하되는 통보를 받았다. 보험회사 지점에는 2명의 내근직원을 두게 되어 있는데 영업소가 된다는 건 1명만 남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지역적 특성상 창구에 고객이 몰려 업무(보험금 청구 고객, 법인계약, 계약자 변경 등)가 극악의 난이도였다. 영업소로 전환이 되면서 내가 남게 되었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창구업무를 해야만 했다. 그 배움과 적응의 시간은 결코 적지 않은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내 꿈 아닌 꿈이 무산되는 것과 함께 내 상황에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노력과 과정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나의 이미지는 패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찌 됐든 나는 중요한 승부에서 패한 것이었기에. 그런 상황에서 더더욱 사표를 낼 수가,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아니지만 한 가지 더 확인을 한 법칙이 있다. 10명 중 9명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으며, 1명은 비웃는다는 것이다.


나의 이미지는 패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와 함께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것이었다. 그렇게 10개월이라는 영원처럼 느껴지는 기간이 지나가고 2020년 7월 새로운 곳에 지점장 발령을 받았다.


앞으로 내가 스스로 사표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쓰라린 패배 덕분에 남은 건 감사함과 불 태울 의지뿐이다. 책의 출간도, 유튜브도, 강연도 모두 잠시 미룰 생각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건

새롭게 부임받은 이곳에서 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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