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의 비는 멈출 줄 모른다. 구름이 낮게 깔리고, 운하 위의 물빛은 하루 종일 무겁게 눌린 듯이 탁하다. 바람은 강물처럼 건물 틈을 흘러 다니고, 그 바람에 실린 빗방울이 뺨을 때린다. 둘째가 그 도시에서 처음 맞이한 비는 매서웠다. 그 비를 피하려고 사들인 레인코트는 새것이었고, 연한 베이지였다. 비닐처럼 반들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무광을 띤 천이었다. 비쌌다. 하지만 그 옷은 그녀의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고왔다.
그 레인코트를 입은 둘째는, 그 도시의 잿빛 속에서 또렷했다. 목깃을 세운 채 좁은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사진 속에 남았다. 사진 속 둘째는 마치 광고 속 인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숨은 생활은 다르다. 외국 땅에서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 불규칙한 날씨와 싸우고, 낯선 언어로 수업을 따라가야 하는 긴장 속에서 버텨야 하는 매일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레인코트는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둘째가 그곳에서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넨 방패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패를 필요로 한다. 어떤 이는 신앙을, 어떤 이는 사랑을, 또 어떤 이는 지식이나 기술을 그 방패로 삼는다. 둘째에게 그 해 겨울의 방패는 레인코트였다.
비는 암스테르담에서 흔한 손님이다. 그 도시는 비에 젖어 살고, 사람들은 비를 피하지 않는다. 우산보다 레인코트를 택하는 이유다. 우산은 바람에 부러지고, 좁은 도로 위에서는 거추장스럽다. 대신 사람들은 몸에 옷을 붙이고, 그 옷으로 비를 견딘다. 비는 멈추지 않지만,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제 길을 간다. 둘째도 그 길 위에 섰다. 가난했지만, 비싼 레인코트를 샀다. 그것은 물질적인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8월의 서울 거리 위에서 그 레인코트를 입은 딸이 걸어오는 모습을. 아스팔트에 튀는 빗물 속에서, 그녀는 아마도 암스테르담에서처럼 고개를 들고 걸을 것이다. 비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고, 발목으로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 레인코트는 그녀를 적시지 않을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겨울은 길다. 해가 짧고, 하루의 절반은 비에 젖는다. 그 속에서 둘째는 버텼다. 레인코트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고, 장을 보고, 밤을 새웠다. 그 옷은 수십 번의 비를 맞았지만, 여전히 고왔다. 삶 속의 어떤 물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닳아 없어지지만, 어떤 것들은 시간이 그 가치를 증명한다. 그 레인코트가 그러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레인코트는 단순히 비를 막는 옷이 아니라, 인생의 비를 견디게 하는 무언가의 은유였다. 언젠가 둘째가 이 땅에 돌아와도, 그 옷을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을 입을 때마다 그녀는 그 도시의 비를, 그 속에서 견뎌낸 자신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인생은 늘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반드시 온다. 그때 우리는 각자의 레인코트를 입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든, 사랑이든, 혹은 단단한 의지든. 둘째의 레인코트처럼, 우리에게도 비를 견디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레인코트는 아직도 이쁘다. 그리고 그 레인코트를 입은 딸은 더욱 이쁘다. 비에 젖은 도시를 걷는 그녀의 뒷모습이, 나에겐 하나의 시이자 하나의 기도다. 그녀가 앞으로도 어떤 비에도 젖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