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 한식 공수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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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대하는 태도는 공평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평은 머리로는 가능하지만, 마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빠는 잘난 자식에게 더 마음이 간다고 한다. 엄마는 못난 자식에게 더 마음이 간다고 한다. 어찌 보면 그것은 본능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결과를 보고 안심하고, 여자는 불안한 곳을 감지하며 마음을 쏟는다. 아빠의 사랑이 ‘확신’이라면, 엄마의 사랑은 ‘걱정’으로부터 비롯된다.


둘째는 원래부터 음식에 집착이 없는 편이었다. 유학생활 중에도 파스타나 샐러드로 끼니를 해결했고, 한국식 밥상을 그리워한 적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한식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김치 냄새가 방에 배고, 반찬 준비에 손이 많이 간다며.


반면 첫째는 달랐다. 볶음김치 10봉, 튜브형 볶음고추장 3개, 본죽 소고기장조림 4개, 크랩풋팟뽕가리 2개, 컵누들 2개, 코인육수 2세트, 그리고 1인용 밥솥 한 대. 나는 그걸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크랩풋팟뽕가리는 뭐야? 우리 집에서도 안 먹던 건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게를 탓할 수가 없었다. 그건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걱정의 실체화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그렇게 사랑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포장한다. 반찬, 약, 속옷, 수건. 그 모든 것은 ‘나는 네 걱정을 멈추지 않는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사랑이란, 결국 효율보다 감정의 기억을 남기려는 행위다. 필요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사라질까 봐 미리 채워 넣는 것이다. 나는 늘 실용적인 걸 좋아한다. 무겁고, 쓸모없는 짐은 싫다. 그런데 아이가 그 김치를 먹으며 웃는 사진을 보니, 쓸모없음 속에도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은 그렇게 비효율적인 것이다.


아빠의 사랑이 논리라면, 엄마의 사랑은 감정이다. 아빠는 아이가 ‘잘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엄마는 아이가 ‘힘들지 않을까’를 상상하며 또 짐을 싼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이들은 스스로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유학생활도, 외로움도, 모든 시행착오도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아이의 가방 속에 들어 있다.


볶음김치 한 봉, 튜브 고추장 하나, 코인육수 몇 알. 그 사소한 것들이 먼 타국의 냉장고 속에서 아이를 지탱해준다. “볶음김치 10봉이면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투덜댔던 내가, 이제는 그 10봉이 얼마나 정직한 사랑의 단위였는지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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