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gnment Created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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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대학은 여러모로 한국과는 다른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단순히 “유럽식 교육은 다르구나” 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 둘째가 겪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그것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생활 전반을 뒤흔드는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크게 다가오는 것은 학사의 구조다. 한국처럼 1학기, 2학기라는 단순한 틀로 나뉘어 있지 않고, 암스테르담은 ‘텀(Term)’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1학기에 세 개의 텀이 있고, 그래서 1년이면 총 여섯 개의 텀이 이어진다. 즉, 한국 대학처럼 중간에 방학이 주어져 호흡을 가다듬는 여유가 거의 없다. 열 달 동안 마치 긴 장정을 떠나는 듯 쭉 이어지는 구조다. 시작하면 끝까지 내달려야 하고, 도중에 크게 쉬어갈 기회가 없다. 둘째는 그 점을 가장 먼저 체감했다. 한국 대학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남들은 방학이라 여행도 가고 인턴도 하는데 자신은 매일 시험 준비와 과제에 시달린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곳의 시스템이자, 이곳이 요구하는 리듬이었다.



두 번째 특징은 과목 수다. 한국 대학생이 보통 한 학기에 여러 과목을 동시에 듣는다면, 암스테르담은 1년에 열 개의 과목만 집중적으로 듣는다. 얼핏 들으면 과목 수가 적으니 오히려 가벼워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매 텀마다 두 과목씩 배정되기 때문에, 그 두 과목이 생활 전부가 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한 달 간격으로 이어지고, 매달 두 번씩 시험을 치른다는 뜻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셈이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시 시험, 숨 돌릴 틈이 없다.



세 번째 특징은 수업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교수나 강사가 학생들의 이해도를 살피면서 진도를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반복 설명도 해주고,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의 교수들은 그런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 교재의 분량이 정해져 있고, 정해진 기간 안에 다 끝내야 하니 수업은 그저 쭉쭉 뽑아 나간다. 학생이 따라오든 말든 진도는 나간다.



네 번째 특징은 진급률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이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진급률이 40% 남짓이라는 사실. 입학은 비교적 수월하다. 하지만 입학 이후의 관문이 훨씬 험난하다. 매달 시험을 보고, 매달 결과로 줄 세움이 이루어지며, 많은 학생들이 그 과정에서 후두둑 떨어져 나간다. 둘째도 작년에 1학년을 보내는 동안 거의 매달 가슴을 졸였다. 이 시험을 망치면 진급이 어려운 건 아닐까,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집으로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힘들다고 토로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버텼고, 기어이 2학년으로 올라섰다. 그 자체로 큰 성취였다.



그렇지만 2학년이 되었다고 해서 더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둘째는 속으로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1학년 때처럼 불안하게 지내진 않겠지.” 하지만 학교는 그 기대를 가차 없이 무너뜨렸다. 과제 폭탄이 쏟아졌다. 작은 호흡의 여유도 없이 과제와 시험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대학이라는 곳이 원래 이렇게 혹독했을까? 한국 대학과 비교하며, 어디가 낫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암스테르담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리듬, 사고의 방식, 심지어는 정신력까지 재편되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매일 밀려드는 과제를 처리하며, 한 달에 두 번씩 시험을 준비하며,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 아이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집사람은 늘 말한다. “이런 혹독한 훈련이 결국 경쟁력을 만들어 줄 거야.” 나 역시 동의한다. 노력 없이 얻는 결과는 없다. 남들보다 조금 더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당장은 힘겹지만, 그것이 언젠가 아이의 삶을 더 단단하게 받쳐줄 것이다. 물론 지금 둘째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과제가 너무 많다, 수업이 너무 어렵다, 이해가 안 된다,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나는 그 비명 속에서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비명이 크면 클수록, 몸부림이 거셀수록, 결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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