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대학 기말고사 풍경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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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부모의 빈방이다. 빈방은 언제나 공기보다 무겁고, 시간보다 느리다. 암스테르담 대학의 시험장 풍경을 아이가 찍어 보내왔다. 낯선 체육관 같은 공간, 빽빽하게 들어선 책상들, 머리를 숙이고 시험지에 매달린 아이들. 수백 명의 청춘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 고개 숙임 속에는 세상의 무게와 젊음의 가능성이 함께 있다. 그 가능성은 불확실하고, 그 무게는 분명하다.



네덜란드의 학기제는 두 달을 단위로 잘려 있다. 한 달은 중간고사로, 다음 달은 기말고사로 끝난다. 리듬은 빠르고, 숨 고를 틈은 없다. 전공 과목 두 개가 청춘의 한 달을 집어삼키고, 그 한 달이 끝나면 성적이라는 잔혹한 증거가 남는다. 청춘은 늘 증명해야 한다. 그들이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그들이 견뎌낸 시간을 증명해야 한다. 암스테르담 대학의 시험장은 그 증명의 공장이다. 시험지는 상품이 되고, 학생은 생산자가 된다.



작은 책상 위에 계산기와 투명한 필통을 올려두고,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 숙임은 겸손이 아니고, 포기 또한 아니다. 살아내기 위한 숙임이다. 젊음은 언제나 고개를 들어야 할 것 같지만, 실은 그 고개 숙임 속에서 길을 찾는다. 수많은 고개들이 일제히 숙여 있는 풍경은 전쟁터 같았다. 전쟁의 총칼 대신, 펜과 종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시험 시간 동안 아이들은 싸웠다. 자신과 싸우고, 불안과 싸우고, 언어와 싸웠다.



부모로서 나는 그 싸움을 멀리서 바라본다. 전쟁터에 아이를 내보낸 장수처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껏해야 밥을 해 먹이고, 시험 끝난 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일뿐이다. 아이가 잘 해내기를 바라지만,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을 버텨내기를 바란다. 잘하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인생을 오래 지탱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1학년은 학생 수가 많아 학교 건물 안에 시험장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외부의 거대한 시험장으로 학생들을 몰아넣는다. 거대한 공간에 흩뿌려진 의자와 책상은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드러낸다. 청춘의 무수한 자리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각자의 시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는 순간, 그 자리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는 수거되고, 청춘의 땀은 증발한다. 남는 것은 성적표라는 얇은 종이 한 장이다. 그 얇은 종이가 아이의 다음 발걸음을 결정한다.



아이의 사진 속 시험장은 낯설고 차갑다. 그러나 그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부모의 눈에 보이는 것은 시험장의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 앉아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다. 그 뒷모습이 멀리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외롭게 만든다. 아이는 홀로 싸우고, 부모는 홀로 기다린다. 기다림은 전쟁보다 길고, 전쟁보다 고독하다.



시험이 끝나면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기숙사의 작은 방에 누울 것이다. 창밖에는 낯선 도시의 불빛이 깜빡인다. 그 불빛 속에서 아이는 잠이 들고, 부모는 먼 곳에서 아이의 안부를 생각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 얼굴을 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교실에 앉아 있던 그 얼굴, 중학교 졸업식에서 어색하게 웃던 그 얼굴, 그리고 지금 암스테르담의 시험장에서 고개 숙인 그 얼굴. 얼굴은 변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아이이고, 부모는 여전히 부모다.



시험은 끝나도 인생의 시험은 끝나지 않는다. 부모의 눈으로 본 아이의 시험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아이가 버텨내야 할 시간은 앞으로도 많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고개를 숙인 자리에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청춘이라고. 청춘이란 무너지는 순간마다 다시 일어서는 시간이라고.



나는 사진을 덮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각이 흘렀다. 아이는 지금 시험을 보고 있다. 나는 그 시험을 보지 못한다. 아이의 고개 숙임은 사진으로만 알 뿐이다. 그러나 그 숙임이 끝나는 순간, 아이는 또 다른 고개 숙임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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