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처음으로 치른 중간고사 성적을 보내왔다.
10점 만점에 9점.
눈을 의심했다. 내 딸이? 9점이라고?
일단 놀랐다. 이게 정말 가능한 점수인가 싶었다. 시험이 그렇게 쉬웠나? 아니면 정말 잘했나?
성적표를 다시 들여다보며 여러 번 확인했다. 그래도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녀석이 해냈구나.
딸아이는 말했다. 시험이 족보랑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고.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운이 좋아도 그 운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족보를 구해서, 그것을 반복해서 외우고, 문제를 익히는 것도 결국 자기 노력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점수는 결코 가벼운 운이 아니었다.
그건 공부한 사람의 몫이었다.
같이 본 다른 과목, calculus는 점수를 차마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 말 속에는 조용한 웃음과 약간의 자존심이 섞여 있었다.
그럼 그렇지.
모든 게 잘 될 리 없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9점을 받은 그 과목은 스윗했고, calculus는 쓴맛이었을 것이다.
공부라는 건 늘 그런 것이다.
달콤함과 고됨이 함께 온다.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이 첫 성적이 고맙다.
이제 막 유학 한 달,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수업을 듣고, 낯선 시험을 치른 아이가
그 정도 성적을 냈다는 건 단순한 점수 그 이상의 의미다.
그건 ‘버티고 있다’는 증거다.
이방의 도시에서, 언어의 벽을 넘어가며 스스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증거다.
“아빠, calculus는 진짜 어려워. 이건 대충이해만해서는 안 돼네!!!!.”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그렇지.
세상 어디에도 쉬운 수학은 없다.
아이도 벽을 마주하고 있다.
넘을 수 있을까? 넘어야 한다.
배움의 과정은 늘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시험이 끝나고 며칠 뒤, 딸은 자신의 점수를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 말투에는 큰 기쁨도, 큰 실망도 없었다.
그저 “이만하면 괜찮죠?”라는 묻듯한 어조였다.
그래, 괜찮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답했다.
잘했다.
너무 잘했다.
사실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점수 뒤에 있는 표정이 중요하다.
그 표정에 지침이 없고, 자신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이의 메일을 다 읽고 나서 사진을 한 장 들여다봤다.
기숙사 책상 위에 펼쳐진 노트, 빽빽하게 적힌 수식들,
창밖으로는 낮은 네덜란드의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 아래에서, 내 딸은 혼자서 문제를 풀고, 점심을 먹고, 잠을 자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일지 모르지만, 부모에게는 그 모든 게 대견하다.
한 달 전만 해도 걱정투성이였다.
집을 구하지 못할까, 밥은 잘 먹을까, 친구는 생겼을까.
그 모든 걱정을 조금씩 지워가는 게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점수 하나, 사진 한 장, 그게 부모를 안심시킨다.
녀석은 멀리서 혼자다.
동생도 없다.
혼자 밥을 하고, 혼자 세탁을 하고, 혼자 공부한다.
혼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단단해진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흔들린다.
잘하고 있구나 싶다가도,
외롭지는 않을까 싶다.
대견하다가도 안쓰럽다.
그 모순된 감정이 부모의 마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간다.
다음 주면 둘째가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그럼 그 둘은 다시 만난다.
서로 다투고, 도와주고, 밥을 같이 해먹고, 늦은 밤 이야기를 나누겠지.
사람은 결국 함께 있어야 한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나는 오늘도 사진을 본다.
시험 성적의 숫자 ‘9’.
그 숫자는 단순한 점수가 아니다.
그건 아이가 낯선 땅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조금씩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한 사람의 여정이다.
그 숫자 하나로, 나는 오늘 밤 안심한다.
공부의 무게와 외로움, 그리고 작은 성취의 빛이 교차하면서
하루하루가 성장의 기록이 된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땐 참 힘들었지. 그래도 잘 버텼다.”
그 말이 지금의 위로다.
딸의 첫 시험 성적표는 그렇게 내게 가을 편지처럼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