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 한 지 어느덧 8년째. 2018년, 교단을 떠나며 마음 한켠은 조용히 내려앉았다. 매 학기 강의안을 준비하던 습관, 연구실 문을 열며 느끼던 아침 공기, 학생들과 나누던 짧은 눈빛과 긴 대화들… 하나하나가 뒤안길로 물러나자, 나는 익숙한 무게감을 내려놓고 낯선 가벼움 속에 서 있었다. 당시는 홀가분하고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나를 다시 걷게 만들 것인가?”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한 마리 새를 떠올렸다. 정년퇴직 후의 삶은, 책임과 의무, 자녀의 양육과 가정경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으니, 자유로운 독수리처럼 훨훨 날고 싶은 소망으로 가득했다. 나를 얽매던 일정과 책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만의 시간과 방향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하늘은 넓었고, 바람은 내 편인 듯 느껴졌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그렇게 이상을 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떤 날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늙은 촌닭처럼 위축되기도 했다. 갖가지 새로운 기술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괜스레 움츠러들기도 했다. 특히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심한 좌절감에 빠진 적도 있었다. 더욱이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혹은 내 안의 낡은 습관 속에서,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는 속삭임이 들려오기도 했다. 날고 싶었지만, 나는 때때로 울타리 안을 배회하며 맴돌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날고 싶은 희망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한때의 의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2024년, 나는 『경제사상사(율곡출판사 간)』를 저술했다. 경제학의 깊은 사유 속에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질서를 향한 철학적 탐색이 녹아 있다. 그것은 나의 경제학에 대한 정리였으며 그것을 독자와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2025년, 『아시아의 경제발전과 과제(두남출판사 간)』를 집필했다. 아시아의 성장 궤적을 추적하며, 아시아 국가들의 압축 성장의 명과 암, 그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균형을 고민했다. 이 두 권의 책은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나의 사유가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로 삼고 싶었다.
이어 나는, 삶의 본질에 대해 더 근원적인 물음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마침내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세상과 인간, 구원과 고통, 믿음과 존재에 대한 질문은, 내 안의 또 다른 층위를 흔들었다. 경제학이 ‘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면, 신학은 ‘이 너머’를 바라보게 했다. 나는 그렇게, 미흡했지만 보이지 않는 차원의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하나의 시선을 가진다. 인공지능(AI)이다. 지난 3년간 나는 AI를 공부해 왔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곧 그것이 인간 언어와 사고, 창의성과 사회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전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잘 진전되지 않았다. 알고리즘은 낯설었고, 코드 앞에서 좌절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그러한 시행착오조차도 내게는 값진 연료였다. 다행히 이 여정은 아내와 함께하고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요즘 “초보자인 내가 겪는 이 어려움이, 바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지금 AI 입문서를 준비 중이다. 누구나 쉽게 AI의 문턱을 넘도록, 친절한 길잡이가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특히 텍스트 생성 분야에서는 지금, 스스로도 놀랄 만큼 깊이 들어와 있다. 단순히 기술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해석’하고 ‘대화’하며,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성찰하며 활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저 공부가 아니라, AI 시대에 대비한 내 삶의 새로운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정년 이후의 삶은, 마냥 유유자적하거나 한가로운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날개짓’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날고 싶다. 어떤 날은 자유로운 독수리처럼, 또 어떤 날은 늙은 촌닭처럼 망설이고 주춤거리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한 건, 그 모든 날갯짓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매일 아침 웅산을 오르며, 자연과 융화하면서도,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깊이 날아가려고 성찰하고 있다.
인생 2막은 내게 이렇게 다가왔다. 성취보다는 깊이, 속도보다는 방향, 완성보다는 과정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시간으로.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여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혹시 당신도 인생의 어느 전환점에 서 있다면, 꼭 날아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처음엔 촌닭처럼 펄펄 날지 못할지라도, 그 안에 깃든 열망은, 언젠가 바람을 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당신의 날갯짓은 지금 어디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