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조금 더 얘기하자.” 이 짧은 문장은 마치 삶의 리듬처럼 들립니다. 무언가를 끝내는 말이 아니라, 내일로 이어지는 쉼표 같은 말입니다. 『죽어감의 시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기다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끝까지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끝자락이 아닌, 삶의 또 다른 방식으로 초대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승에서의 삶이 한 달가량 되는 호스피스 병동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나이 성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1,000여 명의 임종을 보고 깨달은 바를 인문학 브런치 코너 ‘죽음학 강의’에서 김여환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잘 사는 삶은 잘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을 정리하도록 도우면서 느낀 점은, 마지막 순간까지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기술도, 거창한 의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고 정확한 일상들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통증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의료진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무작정 따르기보다 치료의 목표를 스스로 결정합니다. 한 숟갈의 음식을 함께 나누고, 아직 들을 수 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건넵니다. 미뤄온 사과를 용기 내어 전하고, 가족이 헤매지 않도록 통장의 위치, 전화기의 비밀번호, 고장 난 전등을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까지 하나하나 적어둡니다. 자주 먹던 반찬의 양념 비율, 세탁기에 넣는 섬유유연제의 브랜드까지 남깁니다. 이 모든 구체성이 남은 이들에게는 지도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준비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정말 이게 마지막일까?”라는 물음이 새벽마다 가슴을 흔듭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려 할 때 목울대가 먼저 무너집니다. 남겨질 사람을 생각할수록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목소리는 자꾸 안으로 숨어듭니다. 살고 싶은 마음과 받아들여야 할 현실 사이에서 매 순간 흔들리며, 그 작은 일상 하나조차 결심처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품위 있는 죽음’은 장엄한 장면이 아니라, 하루를 성실히 정리해 나가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어 빛을 맞이하고, 짧은 호흡 운동으로 몸의 리듬을 깨우며, 좋아하는 음악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듣는 일,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그 파형(波形)을 관찰하며 자신에게 맞는 조절 전략을 선택하는 일, 만나고 말할 대상을 스스로 정해 대화의 에너지를 아끼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별”은 단절이 아니라 마침표 없는 쉼표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조금 더 얘기하자.” 이렇게 나눈 작별이 오히려 더 따뜻하고 오래 남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메시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2024년 4월 10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유재철 장례지도사는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장례를 예로 들며, 생전의 ‘무소유’ 정신을 따라 번다한 절차 없이 담백하게 모셨다고 회고했습니다. 살아온 방식이 마지막의 얼굴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이 문장은 앞서 말한 ‘작고 정확한 일상’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평소의 삶이 곧 이별의 문장이고, 그 문장은 임종 직전에 갑자기 쓰이지 않습니다. 매일의 문장으로 미리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끝을 정리하는 일이자, 남겨질 이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장례에 대한 자신의 뜻을 미리 밝히고, 휴대폰 속 사진에 짧은 설명을 붙이며, 오래된 편지지에 감정을 눌러 담습니다. 고인의 손글씨 한 줄이 남은 이들에게는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웰다잉’은 철학 강령이 아니라 생활 가이드입니다. 엔딩노트는 길지도, 어려울 필요도 없습니다.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다음처럼요.
먼저 의료는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여부와 통증 관리 원칙, 그리고 선호하는 치료·돌봄 환경(가정·호스피스 등)을 분명히 하며, 장례는 종교(또는 무종교)와 규모·형식, 음악·낭독문, 부고·조문 응대, 유품 처리 원칙을 미리 정합니다. 이어서 자산·디지털은 계좌·보험 목록과 비밀번호 보관 위치, 정기 결제 해지 목록, 디지털 자산 처리 지침을 정리하고, 연락 트리는 즉시 연락 1~3순위와 이후 순서를 포함해 공동체·동호회 등 특수 연락처까지 적으며, 생활 매뉴얼은 집 관리(전구·필터·가전)와 자주 먹는 식단·간단 레시피, 반려동물 돌봄 지침을 남기고, 마지막 메시지는 사과 1 문장·감사 2 문장·부탁 1 문장으로 짧고 명확하게 전합니다. 말해야 할 말은 미루지 않습니다. 사과는 짧게, 감사는 구체적으로, 부탁은 명확하게 남깁니다. “그때 당신 덕분에 버텼습니다.” “내가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것만 부탁합니다.” 길게 미루는 말일수록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짧고 분명한 문장이 관계를 정리합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입니다. 평소의 삶이 임종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선택이 마지막의 품위를 결정합니다. 그러니 오늘을 단속하는 한 줄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이 한 줄만으로도 습관은 정리되고 시간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내면, 마지막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사건이 아니라 오래 준비된 문장이 됩니다.
“여기까지 잘 살았습니다. 내일이 있다면, 조금 더 이야기합시다.” — 이 말이 우리의 마지막 문장이 되도록, 오늘부터 쓰기 시작하면 어떨까요. 저 역시 오늘부터는 하루의 끝에 조용히 묻기로 합니다. ‘지금 이 선택이 내일의 나를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며, 마지막을 미루지 않고 살아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