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0대부터 결혼식 주례를 섰습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예비부부들을 상담하면서 축복의 말을 전하고, 그 순간마다 저의 결혼생활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가톨릭 ‘Marriage Encounter(ME)’를 기본부터 심화 과정까지 수료했고, 본당에서 여러 해 동안 대표 부부로 활동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배운 건 단순했습니다. 부부 사이의 사랑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형성돼 가는 게 아니라, ‘의도’와 ‘훈련’이 있을 때에만 다시 끈끈해지며 깊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지만, 긴 추석 연휴 중 우연히 JTBC〈이혼숙려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조정실의 형광등이 희게 번지는 장면에서, 세 쌍의 부부가 마주 앉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무표정한 자막이 화면 아래에 깔렸습니다. “미성년 자녀: 숙려 3개월 / 자녀 없음: 1개월.” 법이 정한 숫자는 너무도 담백했지만, 그 숫자들을 견뎌내는 마음의 무게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비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오래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외도와 폭언, 생활비 문제와 전처 자녀 문제, 체류 자격과 양육비—사연은 달랐지만, 고통의 결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선택권이 없고, 어른의 결정은 고스란히 아이의 세계에 남겨집니다. 그 화면 앞에 앉아 저는 한동안 말을 잃었고, ME에서 배운 몇 가지 원칙을 조심스레 떠올렸습니다. 마치 한 땀 한 땀 그 상처 위에 놓이는 천 조각처럼, 아주 조용히.
첫째,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말이든, 문자든, 신체든 폭력은 관계의 기반을 무너뜨립니다. 용서하겠다는 마음만으로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은 구체적인 문장과 일정으로 명시되어야 하며, 주변의 감시와 점검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너진 벽이 다시 문이 됩니다. 이 원칙은 저 자신에게도 수없이 되뇌었던 문장입니다. 가정 안에서 존엄은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할 가치입니다.
둘째, 경청은 사랑의 기술입니다. ME에서는 “당신은… 나는…”으로 시작하는 ‘나-메시지’ 표현을 반복 연습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신, 내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연습입니다. “당신은 늘 늦어”가 아니라 “당신이 늦는 날, 나는 불안해서 저녁을 망칩니다.” 감정의 온도를 낮추는 가장 빠른 길은 정확한 감정의 표현이며, 그 감정을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부부는 서로 어떤 형태로든 대화해야 합니다.
셋째, 생활은 신앙처럼 ‘의식화’되어야 합니다. 약속은 말이 아니라, 달력과 통장과 귀가 시간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정시 귀가, 수입·지출의 투명성, 휴대폰 앱 사용의 규칙, 주 1회 솔직한 대화 시간, 분기 별 부부 점검표—이런 ‘의식’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변화는 습관이 되고, 신뢰는 쌓입니다. 저 또한 이 원칙들을 삶에 적용하려 애썼고, 그것이 부부라는 공동체를 부표처럼 지탱해 주었습니다.
넷째, 아이는 ‘중간’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부부가 갈라선다 해도, 아이를 위한 공동의 책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양육비 이행, 면접 교섭의 예의, 학교 행사장에서의 배려와 같은 사소한 규칙이 아이의 심리적 안정감을 지켜줍니다. 어른의 자존심은 내려놓고, 아이의 권리를 최우선에 두는 자세—그것이 부모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랑입니다.
다섯째, 끝맺음에도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이혼은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관계의 다른 형태에 대한 책임 있는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원망을 오래 품으면 결국 내 삶의 내부가 먼저 상합니다. 할 말은 문서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침묵으로. 서로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어른의 마지막 예의일지도 모릅니다.
프로그램 속 한 부부는 끝내 이혼을 선택했습니다. 화면은 잔혹하리만큼 담담했고,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주례자로 살며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어떤 부부는 그 말 뒤에 길을 다시 찾았고, 또 어떤 부부는 서로를 놓아주되 책임을 품은 채 ‘두 개의 집, 하나의 팀’으로 살아가기를 택했습니다. 그 어떤 선택에도 삶의 무게와 사랑의 잔향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제 저는 주례석에서 “꽃길만 걸으며 행복하십시오”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무너지지 말고, 잘 견뎌내십시오. 함께하는 의식과 훈련으로, 수시로 부부간 관계를 의식하며 공부해 가고, 헤어진 뒤라면 규칙과 예의로 서로를 배려해 주십시오.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자기 삶을 재건하는 기술로 바꾸십시오. 아이가 있다면, 내 감정보다 아이의 권리를 먼저 세우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폭력은 단호히 멈추어야 합니다.”
형광등 아래에서 시작된 그날의 장면이 마무리 장면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저는 끝내 이혼을 선택한 두 사람의 내일이 평온하길 기원했습니다. 각자의 집 형광등 아래에서, 같은 아이의 잠을 지키는 어른으로 오늘도 좀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기를 빕니다. 약속은 말이 아니라 달력과 통장과 귀가 시간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께 지키고 실천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잘 헤어지고, 제 몫으로 더 잘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이것이 한때 주례자였으며, 오랜 시간 ME 운동을 함께한 사람으로서, 오늘도 당신들의 삶이 상처에서 멀어지고 평안 속에 머물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저는 주례를 서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제 부부로 한 운명공동체가 된 두 사람은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부부라는 배가 잔잔한 바다를 편안하게 항해할 때도 있지만, 태풍을 만나 검푸른 파도가 일어나는 격랑을 함께 온 힘을 다해 헤쳐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