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다 과거 내 연구실에서 찍은 사진 묶음을 발견했다. 순간 내가 사랑하며 인생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정병산 기슭의 연구실을 떠올리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한 온기를 느꼈다.
국립창원대학교의 21212호실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책 냄새와 오래된 목재의 숨결이 함께 밀려왔고, 창밖 산등성의 녹음이 하루의 박자를 가지런히 맞춰 주었다. 비좁은 방이었지만, 내게는 가장 넓은 우주였다. 논문과 원고가 높아질수록 책장은 무거워졌고,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그곳은 성취를 진열하는 전시장이 아니라, 미완을 기꺼이 견디는 도장(道場)이었다. 실패한 문단, 지워진 각주, 주저하는 학생들과의 면담까지—그 모든 결이 모여 내 정체성의 뼈대를 세웠다.
샘돌 선생이 써 준 네 글자, 修德養義는 내 마음가짐의 거울이었다. 새벽에 들어와 밤중에 나설 때까지 그 글씨는 늘 같은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성급히 자기합리화로 몸을 돌리려 하면, 먼저 글씨가 등을 바로 세웠다. “실력을 덕으로 품고, 재능을 의로 묶어라.” 분주함을 한 겹 벗겨내고 나면 남는 것은 직함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래서 어떤 날은 번지르르한 성과보다 가지런히 묶인 문서철 하나가 더 귀했다. 그 습관은 나를 ‘교수’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며 ‘교수다움’을 간신히 지탱하게 했다.
오후 4시쯤, 나는 종종 연구실을 나와 정병산 둘레길을 걸었다. 사격장을 지나 소목고개로 향하는 길목의 편백숲은 길게 숨 쉬는 법을 알려주었다. 숨이 깊어지면 사유도 길어진다. 편백 냄새 속에서 떠오른 문장들은 방으로 돌아와도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학생생활관 앞 연못의 수련과 쇠물닭은 사계의 교과서였다. 한 잎이 피고 지는 리듬을 보며 한 학기가 시작하고 끝나는 질서를 배웠다. 때를 앞서지 않고, 때를 늦추지 않는 일. 강의계획서와 연구계획서는 결국 그 원리를 내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학생생활관 앞 메타세쿼이아 숲이 일러준 수직의 당당함은 강의실 문고리를 잡는 순간의 자세로 이어졌다. 좌절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 풍경들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21212호실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남겼다. 첫째, 한계의 감각. 열 평 남짓의 좁은 공간이 생각의 선을 더 얇고 길게 당기게 했다. 제약은 논지를 정밀하게 하는 우연한 스승이었다. 둘째, 반복의 품격.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책과 컴퓨터 화면을 펼치는 루틴은 따분함이 아니라 매끈함을 남기며 나를 성숙 시켰다. 둔탁한 자갈이 강물에 닳아 둥글어지듯 사고의 모서리가 다듬어졌던 것이다. 셋째, 관계의 윤리.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던 학생들의 노크, “잠깐만” 하고 들어오곤 하던 동료의 목소리, 가끔 방문하는 손님들의 발걸음까지—그 모든 교차가 우리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밀어 올렸다. 방은 벽으로 닫히지만, 그 닫힘이야말로 사람을 사람에게 열어 주었다.
그 방에서 나는 병을 견디는 법도 배웠다. 2017년 1월, 위암 수술을 받은 후, 회복해 가는 길은 의학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창틀 너머에 있는 나무를 보며 자세를 고치고, 문장을 고치며 마음을 다잡았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몸도 문장처럼 교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고통은 단락 중간에 끊긴 문장 같았고, 회복은 마침표를 찾아가는 느린 문법이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장소가 21212호실이었다. 그래서 그 방은 내게 힐링의 공간이자 서재였고, 서재이면서 작은 성전이었다.
오늘도 나는 명예교수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배우고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예전처럼 앞에서만 서지 않을 뿐이다. 더 많이 듣고, 더 자주 메모하며, 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한다. 21212호실이 가르친 것은 ‘아는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자세’였다. 직함이 사라져도 남는 태도, 자리를 떠나도 계속되는 리듬—그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정체성이다. 내가 나로 남는다는 것은 과거를 움켜쥐는 일이 아니라, 과거가 오늘의 나를 든든히 붙잡게 허락하는 일이다. 21212호실은 추억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책을 펼치는 각도, 학생에게 보내는 이메일의 첫 문장, 산책로에서 고개를 드는 타이밍이 그 사소한 세목 속에서 오늘도 조용히 작동한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하고 싶다. 고맙다, 21212호실아. 너는 내 경력의 주소가 아니라, 내 사유의 체온이었다. 그곳에서 쌓은 시간은 실적표나 이력서에는 적히지 않지만, 내 말투에, 내 걸음걸이에, 내 매무새에 새겨져 있다. 나는 이제 다른 장소에서 다른 하루를 살지만, 문고리를 잡는 손끝의 배려, 창을 여는 타이밍의 겸손, 의자에 앉을 때 허리를 세우는 결심—이 모든 것이 너로부터 왔다고 나는 믿는다.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그 방이 남긴 가장 단순한 문장을 다시 적는다. “공부는 인생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인생을 더 잘 사랑하게 한다.” 나는 21212호실에서 이 문장을 배웠고, 지금도 그 문장에 기대어 하루를 열며 오늘을 산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임을, 오늘도 고요히 확인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기꺼이, 낮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21212호실 선생님, 오늘도 잘 배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