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언어

자연의 순리

by 이천우

단풍의 언어


단풍숲을 거니는 노년은 행복입니다.


요즘 웅산을 오르면, 숲은 말없이 계절의 언어를 먼저 읽어낼 수 있습니다.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신호가 오면 잎은 엽록소 합성을 멈추고, 이어 남아 있던 엽록소를 순서대로 거둬들입니다. 그 순간부터 녹색 막 뒤에 숨어 있던 색들이 차례로 무대에 오릅니다. 카로티노이드는 원래 잎 속에 있던 조연 색소이지만, 엽록소가 물러나면 노랑과 주황의 주연으로 떠오릅니다. 반면 일부 수종은 가을의 환경—잎에 남은 당, 강한 낮빛, 서늘한 밤—이 맞물릴 때 안토시아닌을 새로 합성하여 깊은 붉음을 띱니다. 즉, 노랑·주황은 “드러남”의 결과이고, 붉음은 “만들어짐”의 결과입니다.

이 변화가 색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다음 단계로 잎자루 밑에는 ‘절층(abscission layer)’이 자라나 물과 양분의 통로가 천천히 닫힙니다. 나무는 아직 남은 자원을 몸통과 뿌리로 회수하고, 잎은 더 이상 공급을 받지 못하니 생리 활동을 멈춥니다. 시간이 흐르면 탄닌 등 갈색을 내는 물질이 우세해지고, 약해진 절층을 따라 잎은 조용히 떨어집니다. 낙엽은 땅 위에서 분해되어 부식층을 만들고, 그 부식층이 내년 새순의 밥이 됩니다. 회수→보호→이별→순환. 이렇게 가을 숲은 눈부신 색채 아래서도 한 치의 낭비 없이 다음 해의 성장을 준비합니다.


나는 이 자연의 질서를 웅산 능선에서 눈으로 체감하며 배웁니다. 효율과 조화가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 특히 그러합니다. 나무는 생존을 위해 귀한 질소·마그네슘을 회수하지만, 그 결과가 우리 눈에는 황금과 진홍의 합창으로 보입니다. 기능이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고, 아름다움이 기능을 가리지 않는 이 균형은 공부와 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보기 좋고 쓰임 좋은 것—이 둘을 함께 만족시킬 때만 오래 가는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연의 변화는 결코 성급하지 않습니다. 낮의 길이를 읽고, 순서를 지키며, 때가 오면 물러나는 태도로. 절층은 바로 그 상징입니다. 얇은 이별선이 조용히 자라나 통로를 닫고, 미풍에도 잎이 깔끔하게 떠날 준비를 합니다. 인간의 관계도 이와 닮았습니다. 돌려줄 것은 돌려주고, 남겨둘 것은 남겨두며, 문을 쾅 닫지 않고 정리해서 나오는 일로. 잘 떠나는 법을 익히면, 나중에 다시 만날 때도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단풍은 장식’이라고 오해할 때, 숲은 ‘보호’를 실천합니다. 안토시아닌은 강한 빛과 저온에서 잎을 지키고 자원 회수를 돕는 보호막입니다. 겉과 속이 분리되지 않는 태도—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실제 기능과 이어질 때 신뢰가 생깁니다. 공부의 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기 좋은 요약이 실제 문제 해결을 돕지 못한다면 장식에 지나지 않겠지요. 단풍은 “예쁨은 쓸모와 만나야 완성된다”고 가르칩니다.


낙엽의 귀환은 순환의 문법을 확인시킵니다. 갈색으로 마무리된 잎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이 새순을 밀어 올립니다. 끝처럼 보이는 장면이 사실은 다음 시작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마무리할 때 우리는 정리부터 해야 합니다. 오늘의 메모를 묶고, 남은 과제를 분류하고,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떨어져야 새순이 돋습니다.


물론 해마다 단풍의 강도와 타이밍은 조금씩 다릅니다. 일교차, 토양 수분, 바람, 종 차이 같은 변수가 색의 진폭을 바꿉니다. 하지만 큰 흐름—낮의 단축이 불러오는 과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삶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수를 모두 통제할 수는 없어도, 원리는 붙들 수 있습니다. 수면·식사·운동·공부 같은 기본 리듬을 지키면, 우연의 바람 속에서도 흔들림의 폭을 줄일 수 있습니다. “변수는 조절하고, 원리는 준수한다.” 가을 숲이 전하는 가장 현실적인 격언입니다.


웅산을 내려오며 나는 다시 삶의 표식을 더듬고 가슴에 새깁니다. 낮의 길이를 읽어 때를 아는 일, 회수에서 보호를 거쳐 이별과 순환에 이르는 질서를 지키는 일, 아름다움과 기능의 저울을 수평에 맞추는 일, 낙엽이 흙이 되고 새순이 되는 변신을 신뢰하는 일, 우연의 바람 속에서도 원리를 놓치지 않는 일, 한 잎으로서 전체를 살리는 책임에 응답하는 일,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단계의 품격을 지켜가는 일들 말입니다. 이 일곱 가지를 우리 인생사에 적용하면, 단풍은 계절의 사건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 됩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엽록소—허세와 과잉의 녹색—를 거두고, 필요한 만큼의 붉음—자기 보호와 집중—을 더해 겨울바람을 견딥니다. 그리고 때가 오면, 절층의 얇은 선을 따라 조용히 놓아줍니다. 집착도, 말도, 한철의 색도. 겨울이 두렵지 않은 까닭은 분명합니다. 숲이 오늘의 색을 다 쓰는 동안 이미 봄의 문장을 준비하듯, 우리 또한 소멸을 연습하며 다음 시작을 예행연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자연의 흐름은 우리 인생사의 질서와 품격을 삶의 기술로 전환해가는 내면의 성숙 과정과 같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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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가을 숲의 질서와 변화는 인간 삶의 품격과 이별의 기술, 그리고 내면의 성숙을 배우는 전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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