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의 선택과 한은의 해석

금리인하 기조 속 ‘QT 멈춤’ 시그널

by 이천우

※아래 글은 미 연준 의장의 금리에 대한 정책 선택과 이에 따른 한국은행의 해석에 대한 정책 해설 에세이입니다.



파월의 선택과 한은의 해석


중앙은행은 금융정책을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1. 금리는 내려가는 흐름


금리가 다시 내려가는 흐름 위에 섰다. 그러나 그 길은 매끄럽지만은 않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완만한 금리인하(gradual cuts)"를 예고하면서도 동시에 3년 넘게 이어온 대차대조표 축소(QT, Quantitative Tightening)를 조기 종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통화정책의 이 같은 변화는 한국은행에도 직접적인 파장을 미친다. 특히 기준금리 결정에 있어 그 함의는 더욱 복합적이다. 단순한 동조가 아닌, 그 안의 '맥락'을 읽어야 하는 시점이다.

2. 연준의 구조, 파월의 선택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이하 연준)의 정책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물가안정(price stability)최대 고용(maximum employment), 이른바 ‘이중 책무(dual mandate)’다. 이를 위해 연준은 정책금리(Federal Funds Rate, FFR)대차대조표 정책(QE/QT: Quantitative Easing/Tightening)을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정책금리인 FFR은 은행 간 초단기 자금거래 금리로, 연준은 이를 정밀하게 통제하기 위해 두 가지 행정금리(administered rates)를 활용한다.

준비예치금 이자율(IORB, Interest on Reserve Balances): 은행들이 연준에 맡긴 준비금에 대해 지급되는 이자율로, FFR의 상단 근처를 형성한다. 은행들이 시중에 자금을 빌려주는 대신 연준에 맡겨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레포 금리(ON RRP, Overnight Reverse Repo Rate):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연준에 하루 동안 자금을 맡기고 다음 날 다시 돌려받는 구조로, FFR의 하단을 설정한다. 이는 금융기관이 ‘최소한 이 정도 이자는 보장된다’고 인식하게 함으로써 초과 유동성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 모든 정책은 ‘풍부한 준비금 체제(ample reserves system)’ 아래에서 작동하며, 실물경제로의 전달(transmission)은 기대, 신용, 자산 가격, 환율이라는 경로를 따라 시차를 두고 이루어진다.


최근 파월 의장은 이 체계 안에서 '이중적 완화'를 꾀하고 있다. 금리는 천천히 낮추되, QT는 준비금이 너무 줄기 전에 조기 종료하겠다는 전략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2019년 레포시장 경색 사태처럼, 준비금이 과도하게 줄어들 경우 단기금리 급등과 유동성 불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SRF(Standing Repo Facility)의 존재는 핵심적이다. SRF는 연준이 상설로 운영하는 환매조건부채권 창구로, 금융기관들이 우량 채권을 담보로 단기 유동성을 즉시 조달할 수 있게 한다. 언제든 작동할 수 있는 이 유동성 안전판은 시장의 패닉을 방지하고, 정책 신뢰를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3. 연준의 시그널, 한은의 해석


3-1. 환율 채널: 달러 강세의 완화

QT 중단은 미국 장기금리의 급등 위험을 낮추고, 이는 달러 강세 압력 완화로 이어진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원화 약세로 인한 금리인하 제약이 줄어드는 효과다. 물론 지정학적 리스크나 원자재 급등 같은 비통화적 환율 요인이 존재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금리인하를 멈추고 시장 안정을 우선시할 수 있다.

3-2. 유동성과 위험선호: 시장의 배관 안정


SRF와 함께 연준의 행정금리 조정은 단기금리와 자금시장 ‘배관(plumbing)’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 단기자금시장 불안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글로벌 신용스프레드와 외화조달비용의 급등 리스크도 줄어들었다. 한국의 외화 자금시장도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은행이 금융안정보다는 물가와 성장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는 배경이 된다.


한국은행도 유사한 기능을 하는 RP 매입, 공개시장운영, 한시 유동성 공급제도 등을 운용 중이며, 최근에는 상시 유동성 공급 창구 도입도 검토 중이다.

3-3. 국내 물가와 성장: 신호는 ‘인하’, 조건은 ‘엄격’

금리인하와 QT 중단은 기업과 가계의 금융비용을 낮추고, 대출과 소비를 자극함으로써 경기에는 우호적인 요소다. 하지만 한국의 서비스 물가, 임금, 공공요금은 여전히 ‘끈적한(sticky)’ 상태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다시 오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릴 수는 있어도, 속도는 데이터에 의존해 회의별로 조절해야 한다.


3-4. 가계부채와 부동산: 레버리지의 재팽창 경계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주택 수요와 가계부채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금리에 민감한 차주층을 중심으로 신용 레버리지가 다시 확장될 위험이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일부 인하하더라도, DSR/DTI 규제, 가계대출 총량관리, 비은행권 풍선효과 감시거시건전성 수단을 병행해 정책 효과를 분산시켜야 한다.

4. 기준금리의 새로운 나침반


이제 한국은행은 ‘방향은 인하, 페이스는 완만, 운용은 데이터 기반’이라는 원칙 아래 기준금리 경로를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정책 변화로 인해 외부 제약은 다소 줄었지만, 국내적 리스크 요인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정책의 소통에 있어서는 금리는 물가와 성장, 유동성 수단은 시장 안정이라는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책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다. 준비예치금, 콜금리, RP, CP 등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내판 ‘풍부한 준비금 체제’ 하한선을 사전에 설정하고, 단기자금시장의 배관 압력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은행은 파월의 신호를 읽되, 자신의 조건과 책임에 맞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운용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인하’라는 한 방향만이 아니라, 그 방향을 어떤 속도로, 어떤 조건 아래에서 가느냐가 이제 더 중요해졌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0일 오후 04_22_09.png


요컨대, 연준이 금리는 천천히 내리고 QT는 빨리 멈추려는 만큼, 한국은행은 환율·금융안정의 제약이 다소 풀린 환경에서 ‘점진·조건부 인하’를 기본값으로 삼되, 국내 물가의 끈적임과 가계부채 민감도를 보며 회의별로 속도를 미세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 #파월 #QT #금리인하 #장기금리 #레포시장 #한국은행 #환율 #물가와성장 #가계부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