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떠올릴 때, 문득 스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앞으로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까? 원할 때 병원에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필요할 땐 도움을 청하거나 거절할 수 있을까. 내가 여전히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 남을 수 있을까. 노후란 어쩌면, 그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거나 관계가 삶의 의미를 만든다고 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결국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경제력, 그중에서도 지속 가능한 현금흐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기 건강검진과 운동, 재활과 약 한 봉지까지. 건강은 돈 없이는 지켜지지 않는다.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교통비, 식사비, 작은 선물 하나도 다 비용이 든다. 아무리 정이 깊어도, 배려가 줄면 연락은 끊기고 만남은 멀어진다. 마음만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숫자가 아닌 삶의 설계 — 50/30/20
노후 세대의 경제력을 이야기할 때, 복잡한 포트폴리오보다는 단순한 구조가 더 중요하다. 50/30/20이라는 비율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의 우선순위를 담은 설계도라 할 수 있다.
50%는 필수지출이다. 주거, 식비, 공과금, 보험, 교통, 의료처럼 생존을 위한 비용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범주를 제대로 충당하지 못하면 삶은 불안정해진다. 특히 주거비가 이를 초과한다면,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과감히 비우고 줄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30%는 선택지출이다. 여행, 외식, 모임, 취미, 선물처럼 삶의 온도를 만드는 항목들이다. 이 지출이 없으면 사람은 빠르게 말라간다. 다만 상한선을 정해야 지속된다. “한 달에 모임 두 번, 총 8만 원”처럼. 관계는 줄이지 않되, 예측 가능한 비용 안에 머무르게 설계해야 한다.
20%는 저축과 투자다. 미래의 선택지를 지키기 위한 사전 행위다. 그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상금의 확보다. 생활비 10~20개월의 현금을, 투자 계좌와 분리해 별도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후 연금저축, 소액 적립식 투자 등을 자동이체로 설정한다.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라 구조를 설정하는 일이다. 저축은 결심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이 단순한 비율은 노후의 삶을 균형 있게 지탱하는 틀로서 융통성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틀 위에서 우리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감각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경제력이 스로틀이다
이쯤에서 스로틀(throttle)이란 비유를 들고 싶다. 원래 이 스로틀은 자동차나 비행기의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말한다. 페달을 밟으면 더 빨라지고, 떼면 속도가 줄어든다. 삶도 이와 같다. 돈은 우리의 스로틀이다. 여유가 있으면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없으면 줄일 수밖에 없다. 멈추고 싶지 않아도 멈춰야 한다.
건강을 챙길 여유, 사람을 만나러 갈 자유, 고요한 공간에서 쉴 권리까지. 이 모든 것은 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경제력은 삶을 다급하지 않게 만든다. 경제력은 관계를 미루지 않게 만든다. 경제력은 병을 키우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경제력은 단지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품위의 조건이고 자율의 바탕이다, 고 말할 수 있다.
선택지를 사수하는 다섯 가지 실천 사항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사실 복잡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작게 시작하되, 꾸준히 쌓는 것이다.
매달 들어오는 돈 한 줄을 더 만든다. 연금 외에도 임대, 배당, 소액 부업 등 안정적인 흐름을 만든다.
생활비 10~20개월 치의 비상금을 확보한다. 투자와 분리된 독립 계좌에 마련해 두는 것이 핵심이다.
통장을 셋으로 나눈다. 필수, 선택, 저축으로 구분하고, 자동이체로 구조화한다.
건강 루틴을 단순화한다. 오르막 걷기와 10분 하체 근력 운동이면 충분하다.
관계를 캘린더에 고정한다. 예측 가능한 약속 두 개. 배우자와의 산책, 지역 모임 한 번이면 충분하다.
이 다섯 가지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를 실천하는 사람은 설사 코로나와 같은 나쁜 운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좋은 운이 와도 자신을 잃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품위는 선택지로부터 온다
노후의 삶은 결국 선택지의 총합이다. 품위도, 자율도, 나다움도 모두 거기에서 출발한다. 50/30/20이라는 구조는 그 선택지를 지키는 실천의 틀이다.
돈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돈은 노후의 존엄을 유지하게 해주는 도구다. 건강을 지키고, 관계를 이어가며, 끝내는 나답게 살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준비는 단지 숫자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버틸 수 있는 돈이 있어야, 버틸 수 있는 몸과 마음도 함께 유지된다. 그리고 그 위에서 우리는 다시 사람을 만나고, 길을 걸으면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선택지를 지키는 삶을 시작하는 첫날로 삼읍시다. 그리고 바로 실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