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의 주황빛으로 읽는 계절의 변화
열차를 타고 가며 창밖을 보고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나는 1주일 중 하루는 DCU 유스티노 캠퍼스에 신학강좌를 수강하러 대구를 간다. 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감나무는 초록에서 주황, 주황에서 붉음으로 이동하며 시간을 보여준다. 그 변화는 빠르지 않지만 분명하다. 계절이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듯, 나무도 천천히 색을 바꿔 간다. 그것은 그저 바라보기 위한 장면이 아니라, 미세한 색의 신호를 감지해 일상의 리듬을 조절하는 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색을 감지하고, 몸으로 조절하고, 손끝으로 마무리하면 하루의 리듬이 정돈된다.
나는 창원-대구를 오르내리며, 차창 밖 풍경 속 감나무를 자연 달력처럼 바라본다. 잎의 초록이 물러나고 과실의 주황이 선명해질 때, 계절이 바뀌었음을 가장 먼저 느끼게 된다. 이 단순한 변화는 복잡한 설명 없이도 계절학(페놀로지)의 생활 교과서처럼 작동한다. 오늘의 색을 눈치채고, 그 신호에 맞춰 하루의 속도를 조절하면 되니까.
낮의 길이가 변하면 식물 호르몬이 반응하고 엽록소는 거둬들여진다. 그러면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뇌는 그 색을 통해 자연의 ‘상태 전환’을 읽는다. 초록은 성장, 주황은 성숙, 붉음은 마무리의 신호로. 이 단순한 색의 이동만으로도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느 속도로 걸어야 할지 감지할 수 있다. 설명보다 감지, 형식보다 실행이 먼저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자연의 질서에 몸을 조율하곤 한다. 아침에 창밖을 바라보며 "초록·주황·붉음·회색" 중 오늘의 색 하나를 소리 내어 말한다. 이어서 10분 정도 천천히 현관을 걸으며 몸을 풀고 호흡으로 속도를 조절한다. 숨이 편하면 평소대로, 가쁘면 약속을 한 개 미루고, 많이 가쁘면 등산 시간을 줄이고 낮잠으로 리듬을 맞춘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을 마쳤다면, 집안에 있는 나무 앞에서 5초가량 잠시 멈춰 잎 한 장을 닦거나 화분의 돌 하나를 줄기 쪽으로 옮겨두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짧은 혼잣말-"오늘은 더 반짝였네" 정도로. 주 3일은 외출 전 현관에서 물건 하나를 비워내며 정리하고 다음 계절을 가볍게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한 단어, 한 호흡, 나무 앞 잠시 멈춤, 현관의 한 동작이 이어지면, 달력 없이도 내 몸과 마음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정돈된다.
앱이나 스티커로 이 변화를 기록하는 일도 해보았지만, 오래 가는 것은 결국 몸으로 기억된 감각의 루틴이었다. 하루의 색을 한 단어로 시작하고, 호흡으로 강도를 정하며, 나무 앞에서 잠시 멈추며 하루를 정리한다. 그렇게 시간이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따라 질서를 이루는 형태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 변화의 미묘함이 나를 멈춰 세운다. 감의 주황빛이 선명해질수록, 나는 계절이 또 한 번 넘어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주황은 단지 과일의 익음이 아니라, 나 역시 나이 들고 있음을 은근하게 알려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는 세월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감나무는 아무 말 없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 빠른 흐름 앞에서 불안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점점 그것을 즐기는 쪽으로 받아들인다. 변화의 속도는 조절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감각하고 선택하는 방식은 내 몫이다.
한때는 시간을 쫓느라 매 순간이 불안했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면 어딘가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계절의 색을 따라가며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다 익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초록의 시간도, 주황의 시간도, 붉음의 시간도 다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계절이 주는 감각을 충분히 누리기로 했다. 초조하게 앞당기지 않고, 억지로 붙잡지도 않으며.
감의 주황빛은 나에게 묻는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떤 색으로 익어가고 있느냐고. 나의 대답은 여전히 간단하다. 한 단어, 한 호흡, 나무 앞 잠시 멈춤. 그것으로 충분하다. 형식을 덜고 감각을 남기면, 계절은 나를 흔드는 바람이 아니라, 내가 삶을 정돈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정돈된 하루하루가 쌓이면, 세월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라 천천히 곱게 익어가는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오늘의 한 문장
한 단어, 한 호흡, 나무 앞 잠시 멈추면, 오늘의 리듬은 잘 정돈되는 것이다.
#가을(autumn)
#자연달력(natureCalendar)
#생활루틴(dailyRoutine)
#페놀로지(phenology)
#리듬관리(rhythm)
#호흡점검(breathCheck)
#완료의식(closure)
#미니멀실천(minimalPractice)
#계절감각(seasonSense)
#마음정리(cla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