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며칠 전부터 발레복을 몸에 맞게 고쳐 입고 발레 연습을 하며 들떠 있다. 부산여고 27회 졸업 50주년 행사에 동기들 모두 “주연”으로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란다. 본행사 뒤에는 합천으로 1박 2일 여행도 이어진다고 하니 부럽다. 70대에 접어든 신중년들이 반세기 만에 다시 모여 추억을 나누는 일 자체가 삶의 에너지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류학교라서가 아니라, 각자가 성실히 버틴 세월이 서로를 지탱해 준다는 뜻에서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된다.
아내는 올해 유난했던 무더위에도 부산을 오가며 합창·발레 연습을 이어왔다. 사진을 찍고, 함께 식사하고, 지난 4월에는 1박 2일 강릉 단합대회도 다녀왔다. 카톡방으로 출석을 독려하고, 회비·기금을 모으고, 옛 사진을 모아 연습 장면과 엮어 유튜브 동영상까지 만들었다. 드디어 오늘 10월 14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본행사가 열렸다.
행사 1부는 개회 선언, 국민의례, 회장 인사, 회무·감사 보고, 예·결산 승인으로 질서를 세우고, 2부에서는 졸업 70·60·50·40·30·20주년 기념사진 촬영과 시상으로 시간을 묶는다. 무대 앞에서 기수별로 이름이 호명되고, 기념 패와 꽃다발이 오가며, 사진사가 각 기수의 단체 샷을 차례로 담는다. 3부는 흥겨운 축제다. 흰 발레복을 맞춰 입은 무용팀이 원을 그리며 백조로 등장하고, 드레스를 차려입은 합창·합주팀이 진주 목걸이를 빛내며 무대를 채운다. 플루트 전주가 조심스럽게 길을 열고, 후렴에서 모두가 손 하트를 들어 보이면 조명이 얼굴을 하나씩 밝힌다. 짧은 환호와 박수가 파도처럼 이어지고, 단체 사진은 곧바로 새로운 역사가 되어 저장된다.
멀리서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나도 설렌다. 한평생 이렇게 많은 동창들이 동시에 가슴 뛰는 이벤트가 몇 번이나 있을까. 미국에서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기들이 있다고 하니 못 말리는 동문들이다. 어느 학교든 고교 동창회는 세대를 이어 주는 몇 안 되는 그물망이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부산여고 27회가 주축을 이룬 임원진이 앞으로 2년간 전체 동창회를 이끈다고 하니 응원을 보낸다. 아내는 총동창회 홍보분과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데, 아내가 요청하면 보조로 열심히 뒷받침할 생각이다. 함께 산다는 건 서로의 무대 뒤를 정리해 주는 일이 아닌가.
어제 13일 아침엔, 진해구청 앞 시외버스 정류소까지 캐리어를 들어주며 함께 걸었다. 부산 하단행 시외버스를 타는 자리에서 멋쟁이 김♣자 씨가 합류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나는 짧게 인사를 건넸다. “잘 다녀오세요.” 내 인사는 단순했지만, 그 인사에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 동창회 행사는 절차로 조직을 다지고, 사진과 공연으로 연대를 확인한다. 무대의 조명이 꺼진 뒤에도 몇 분은 기록을 정리하고, 다음 만남을 위해 연락망을 챙길 것이다. 이런 뒤풀이 노동이 있어 공동체는 늙어 정체되지 않고, 활력을 찾아 지속가능해진다. 몇몇 동창들은 머지않아 호텔의 조명과 합천의 별빛을 모아 한 권의 동창회보를 장식하기 위해 모일 것이다. 그리고 부산여고 27회는 또 새로운 이벤트를 개최할 근거를 마련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이 모든 여정이, 나에겐 부산여고 27회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깊은 신뢰의 증표이자, 삶을 아름답게 직조해 온 이들에게 드리는 진심 어린 존경의 마음이다.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