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건너며
인생의 가을에 선 필자는 나룻배에서 조용히 노를 저어간다
나는 종종 사연 많은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TV 프로그램을 본다.
어떤 이는 일찍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어떤 이는 자식과의 인연이 끊긴 채 늙어간다.
또 다른 이는 평생을 일터에 바치며
단 한 번도 ‘나’를 위한 시간을 누리지 못한다.
정말, 사람의 삶에는 어쩌면 이토록 많은 사연들이 스며 있는가.
누구나 마음 한 켠에 말 못 할 사연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 역시 그 물음 앞에 서 있다.
이제는 더 오를 곳보다
천천히 내려다보며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남은 시간의 무게보다,
쌓아온 시간의 결을 들여다 보고 싶은 시기.
내 안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그 시절의 나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시간이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늦은 오후, 아무 말 없이 짐을 챙겨 웅산에 오른다.
웅산의 중턱에 서면 진해 앞바다가 시야 가득 펼쳐진다.
붉은 해가 천천히 바다 속으로 내려앉는 풍경.
그 짧은 찰나, 마음은 불쑥 아쉬움에 젖는다.
“조금만 더 머물 수 있다면…”
하지만 해는 멈추지 않는다.
제 순서를 따라 말없이 사라질 뿐이다.
해가 저물고 나면 달이 떠오른다.
나는 발걸음을 덕산 소류지로 옮긴다.
그곳의 달빛은 유난히 조용하다.
호수 위에 번지는 은빛은
온종일 떠다니던 생각과 소란을 가라앉히고,
내 마음속 깊은 물결마저도 다독여 준다.
그 달빛 아래에서 나는 문득 되묻는다.
“삶이란 무엇인가.”
한때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았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그러나 이제는 안다.
삶은 가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 멈추고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젊은 청년 시절, 바다는 나를 역동적으로 이끌었다.
그 물결은 예측할 수 없었고,
때로는 거칠게 나를 흔들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었다.
나는 의심보다 전진을 택했고,
머뭇거림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 시절의 나는
바다처럼 광활한 곳에서 뛰고 싶었고,
파도처럼 어디든 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르게 살아간다.
속도보다 균형을,
확장보다 되새김을,
성취보다 되돌아봄을 택하게 되었다.
되돌아보고, 이해하고,
조용히 놓아주는 일에서
비로소 삶은 깊이를 갖는다.
지금 나는 나룻배에 앉아 있다.
손에 닿는 노의 감촉은
시간의 흔적처럼 거칠지만,
그 안엔 익숙함과 온기가 있다.
천천히 호수 중심을 향해 노를 저어 간다.
물살은 조용히 갈라지고,
그 틈새로 달빛이 스며든다.
나는 최선을 다해 천천히 노를 젓는다.
이 노는 작별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다.
살아온 나를 향한 고요한 감사의 인사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고,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동작도 아니다.
그저, 내 안의 시간들을
조용히 배웅하는 행위일 뿐이다.
달빛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생의 흔적이 머물러 있다.
나도 그 흐름의 한 줄기일 뿐이다.
내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그 평범함 속에
어쩌면 가장 소중한 진실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웅산의 노을과 덕산 소류지의 달빛,
그 둘은 하나의 궤를 이루며 내게 말을 건넨다.
해가 지고 달이 뜨듯,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누군가의 하루가 저물고,
또 누군가의 밤이 시작된다.
나는 지금, 그 경계선 위에 조용히 서 있다.
노를 멈추기 전까지
나는 부드럽게, 그러나 또렷하게 노를 젓는다.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을 떠나보내는 중입니다.”
허겁지겁 살아오던 시간은 흘러갔고,
이제는 하루를 정리하듯,
한 생을 다독이며 보내는 중이라고.
삶은 얼마나 멀리 갔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떠났느냐가 더 오래 남는다.
내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무리,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품위 아닐까.
나는 이 마지막 시간을
조용히, 그러나 의식적으로 건너가고 있다.
더는 증명하려 하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며
노을을 따라,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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