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함의 미덕
코끼리 무리들은 느린듯 보이지만 철저하게 새끼들을 보호하며 움직인다.
느긋함은 단지 속도를 늦추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균형을 다시 찾고, 중심을 차분히 세우는 일이다. 할 일에 떠밀려 숨이 가빠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나 자신을 구석으로 밀치고, 가까운 사람에게 괜히 날을 세우기도 한다. 밥맛이 사라지고,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느긋함은 그 무채색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해주는 작은 브레이크가 되어준다.
젊은 시절엔 험한 세상에 적응하느라 황야의 무법자처럼 즉흥적인 선택도 서슴지 않았다. 시간보다 기회가 더 중요했고, 준비보다는 반응이 앞섰다. 빠르게 판단하고 곧장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여유는 한가함이나 게으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삶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제는 속도와 방향을 내가 정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조급함 대신 차분히 준비된 일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이듦이 선물하는 느긋함이고, 삶을 더욱 깊고 다정하게 만드는 시작점이라 생각된다.
젊은 시절엔 광야의 무법자처럼 즉흥적인 판단도 서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느긋함은 선택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지혜가 된다.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마음만 예전 속도로 달리면 피로와 짜증이 앞선다. 반대로 호흡을 조금 늦추고 마음을 한 템포 내려놓으면, 긴장이 풀리고 감정의 매듭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기 전에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먼저 들여다보는 일이 먼저다.
그 출발은 ‘빠름의 비용’을 계산하는 데 있다. 아침에 할 일을 적을 때, 그 옆에 ‘서두르면 잃는 것’을 한 줄 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병원 예약을 빽빽이 잡다 보면 이동 중 피로가 누적되고, 예기치 않은 낙상의 위험도 커진다. 식사를 거르면 약 복용 시간이 밀려, 하루의 생활 리듬이 쉽게 흐트러진다. 무언가를 서둘러 끝내려는 선택이 결국 더 큰 불편을 부를 수 있다. 잃는 것이 더 크다면, 잠시 속도를 늦추는 편이 오히려 현명하다. 그것은 성취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보다 안정감 있고 품위 있게 다듬어 가려는 태도다.
느긋함은 의지가 아니라, 리듬의 문제다. 아침 3분·점심 2분·저녁 3분만 코로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잠시 머문 뒤 천천히 내쉬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흐름은 충분히 달라진다. 어깨의 긴장이 풀리고, 심장이 차분해지면 말이 짧아지고 판단이 선명해진다. 불필요한 반복과 실수도 줄어든다. 천천히 흐르는 호흡 하나가 하루의 전체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느긋함은 준비에서 비롯된다. 해군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나는 ‘15분 전·5분 전’ 문화의 가치를 배웠다. 출항 15분 전에 장비와 인원 점검을 마치고, 5분 전 구령이 떨어졌을 땐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했다. 노후 생활도 마찬가지다. 외출 전 옷·약·지갑·교통수단을 미리 준비해 두면, 현관 앞에서 허둥대지 않고 여유롭게 집을 나설 수 있다. 느긋함은 성격이 아니라 습관이다. 시간을 앞당겨 준비하는 조용하지만 단정한 생활 태도에서 비롯된다.
일상은 느린 루틴으로 묶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전에는 가벼운 산책이나 정리를, 오후에는 집중이 필요한 일을 배치해 본다. 메일이나 메신저는 하루 두 번만 확인하고, 약 복용과 겹치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하면 처리 속도는 다소 늦더라도 실수는 훨씬 줄어든다.
느긋함을 가장 잘 연습할 수 있는 곳은 식탁이다. 밝은 조명보다는 부드러운 간접 조명, TV 대신 잔잔한 음악, 큰 접시 대신 작은 접시 두 개로. 식사를 시작하기 전 10초 동안 오늘의 맛에 기대하는 한 문장을 떠올리고, 한 입마다 도구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다. 질문은 짧게, 대답은 천천히,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 다시 한 입을 든다. 디저트는 15분 뒤로 미루면 자연스럽게 식사의 속도와 흐름도 여유를 찾게 된다.
하루의 끝은 거창한 일기보다 짧고 따뜻한 메모 한 줄이면 충분하다. “오늘 만난 Y씨가 참 편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좋은 느낌을 적고, “내일은 병원 준비를 15분 일찍 시작하기”처럼 작은 계획을 덧붙인다. 조용히 숨 고르듯 메모장을 덮으면 마음도 가라앉고, 잠도 천천히 다가온다.
결국 느긋함은 시간을 늘리는 마법이 아니다. 같은 시간 안에서 불필요한 서두름과 긴장을 걷어내는 섬세한 기술이다. 빠름의 비용을 되짚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반응과 결정 사이에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갖는 일. 출발 15분 전에 준비를 마치고, 매일의 식사를 느긋함의 연습장으로 삼으며, 삶의 작은 공동체 속에서 그 리듬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의 리듬을 가다듬다 보면, 오늘 저녁 식탁 위에 머문 한 모금의 여유가, 내일을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품어줄 것이다.
노부부의 천천히 대화하며 식사하는 모습이 여유롭다
#은퇴라이프,
#느긋함,
#슬로우라이프,
#식탁루틴,
#천천히먹기,
#지역커뮤니티,
#취미운동강좌,
#건강한습관,
#호흡루틴,
#일상회복,
#정서적안정,
#활력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