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천자암 뒤쪽 길로 웅산 정상 능선에 올랐다. 가쁜 호흡을 고르며 마지막 경사에 발을 올리자, 흰 국화꽃 여러 송이가 고고한 자태로 나를 맞는다. 능선 양옆, 붉게 물들어가는 관목들 사이로 정갈하게 피어난 흰 국화의 무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람에 휘청일까 망설이는 듯 보였으나, 제 자리를 단단히 지키며 단정하게 서 있었다. 바위틈, 얇은 흙 위에서도 제 몫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낸 그들은, 아무 말 없이도 이 계절의 중심에 서 있는 듯했다. 올여름의 무더위를 견딘 나무들이 가을 채비를 하듯 잎을 떨구고 몸을 가볍게 하는 동안, 국화는 해맑게 웃으며 능선으로 올라오는 손님을 조용히 맞이하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져 차가운 기운이 감돌아도 국화는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문다. 산속에서 솟는 샘물처럼 맑은 모습으로 여기저기 다소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국화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국화가 흔들리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다 보니, 나 또한 마음속 어딘가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왜 하필 지금, 이 가을 끝자락에서 국화가 또렷해지는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나 역시 정리해야 할 무언가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내 안의 목록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오래된 후회, 무거운 기대, 흐릿해진 다짐들. 잠시 그 감정들을 드러내며, 그것들이 내 삶에 어떤 자리를 차지했는지를 되짚는다. 그리고 국화처럼 나도 덜어내야 할 것들을 마주한다. 덜어낸다는 것은 잊는 것이 아니라, 더는 그것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그 다짐이 내 안에서 조용히 자리 잡는다.
바람이 스치면 하얀 꽃잎의 결이 물의 첫 잔물결처럼 흔들린다. 과장된 흔들림이 아니라, 균형을 잃지 않는 미세한 떨림이다. 그 작은 떨림은 "겨울 채비를 하라"는 몸짓 같고, 곧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도 침착하게 버티라는 무언의 조언처럼 들린다. 나는 그 조언을 듣고 잠시 숨을 고른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마음도 스스로를 단정히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내 안에서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천천히 피어난다. 국화 앞에서는 내 숨소리가 자연스레 낮아지고, 마음은 가지런히 정돈된다. 들뜸은 가라앉고, 슬픔은 정리된다. 이윽고 조촐한 정리로 이어진다.
국화가 알려주는 핵심은 피어남보다 버팀이다. 만개의 찰나보다 계절을 통과하는 인내가 더 길고도 더 깊다. 국화는 스스로 과시를 포기하고 준비를 택한다. 필요 없는 수분을 줄이고, 꽃의 결을 정돈하며, 추위를 맞을 질서를 세운다. 자연의 언어로 번역하면 "덜어내고, 남길 것을 남기라." 이 간단한 문장은 우리 삶의 만사에도 통하지 않을까.
인생의 가을에 들어선 노년 세대에게 이 메시지는 더 분명해진다. 오래 붙잡은 물건, 오래 유지한 관계, 오래 쫓던 욕망—그중 많은 것은 한때 소중했지만, 지금의 우리를 지탱하는 본질이 아닐 수 있다. 노년의 품격은 더 채우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불필요한 것을 단정히 놓고, 핵심을 조용히 지키는 데서 생겨난다. 국화가 선택한 흰빛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색을 더해 눈을 사로잡는 대신, 여분을 덜어 마음을 가라앉힌다. 흰빛은 빈 것이 아니라 정리된 것이다.
정리는 포기가 아니다. 정리는 우선순위의 재배열이다. 나를 지켜준 이름들 중, 정말 끝까지 함께할 것만 남기는 일이다. 생활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집 안의 물건을 줄이면 동선이 단순해진다. 관계에서 기대와 계산을 더는 만큼 마음의 여백이 생긴다. 일과 취미를 다시 고르면 하루의 리듬이 숨을 고른다. 남기는 것은 뼈대, 보내는 것은 여분—이 단순한 대원칙이 노년의 체력을 아끼고, 마음의 질서를 회복시킨다.
웅산 능선의 국화는 우리에게 속도보다 방향을 묻는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그만둘 것이냐를 묻는다. "더 크게 보이기"보다 "조용히 정리하기"를 가르친다. 나를 과장하는 언어를 거두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아름다움을 회복하라고 권한다. 그 권유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오늘의 나를 정확히 볼 수 있다. 잃어버린 시간도, 이룬 것에 대한 자만도 조용해진다.
마무리는 결승선이 아니라 다음 계절의 관문이다. 좋은 마무리는 다음을 가능하게 한다. 국화가 혹독한 바람을 건너며 내년을 준비하듯, 노년의 정리는 삶의 지속을 위한 설계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규칙적인 생활, 나를 지키는 몇 사람, 수입과 지출의 단정한 질서, 나를 맑게 하는 독서와 산책—이런 것들이 "버팀의 근육"을 만든다. 근육은 크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걷기 위해 필요하다.
오늘 능선에서 만난 흰 국화 무리는 내게 이렇게 말한 듯하다. "끝을 정리하는 힘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줄임은 후퇴가 아니라 성숙이다. 덜어냄은 선택이고, 선택은 책임을 낳고, 책임은 품위를 낳는다. 그래서 노년의 아름다움은 단출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언뜻 소박해 보이나, 가까이 갈수록 결이 보이고 균형이 보인다. 그것이 국화가 보여주는 미학과 같은 마무리의 품격이다.
하산길에 다시 산들바람이 분다. 꽃잎이 한 번 더 미세하게 웃는다. 나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많지 않다. 불필요한 것을 하나 더 내려놓고, 필요한 것을 하나 더 단단히 세우는 일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내일의 추위가 닥치면 흔들리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국화처럼. 그렇게 나는 오늘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