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한 기회에의 장벽이 있는가?

기회의 사다리

by 이천우

유리한 기회에의 장벽이 있는가?



기회의 사다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유리한 기회에의 장벽(barriers to advantageous opportunities)'은 단순히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이 시작되는 출발선에서, 선택의 가능성 자체가 다르게 주어진다는 점을 뜻한다. 누군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양한 선택지를 손에 쥐고 출발한다. 따뜻하고 좋은 가정, 고르게 펼쳐진 교육, 실패를 감싸줄 사회적 안전망, 그리고 누군가의 기대와 지지를 등에 업고 걷는다. 반면, 어떤 이는 그 선택지조차 갖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한 즉각적인 결정만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 장벽은 소리 없이 작동하지만, 인생의 방향을 근본부터 바꿔놓는다.


1953년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東京都墨田区)의 한 병원. 같은 날 같은 산부인과에서 단 13분 차이를 두고 태어난 두 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간호사의 우연한 실수로, 그들의 삶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부유한 가정의 아기는 가난한 집에, 가난한 집의 아기는 부유한 집으로 가게 되었고, 누구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수십 년이 흘렀다. 실수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 환경, 기회, 그리고 미래까지 통째로 교체한 '인생 설정값의 오류'였다.


가난한 집으로 간 A씨는 단칸방에서 복지에 의존하며, 아버지 없이, 중졸 학력으로, 트럭 운전사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결혼도 하지 못했다. 그의 삶에서 '기회'란 단어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다. 반면, 부잣집으로 간 B씨는 사립학교를 거쳐 고등교육을 받고, 결국 기업의 CEO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주어진 배경은 곧 '가능한 삶의 지도'였다. 그 차이는 노력이나 성격이 아니라, 오직 출발선이었다.



진실은 60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밝혀졌다. B씨의 동생들이 품은 의심—"형은 왜 우리와 너무 다르게 생겼지? 왜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버렸지?"—에서 비롯된 DNA 검사는 충격적인 결과를 드러냈다. A씨가 진짜 장남이었고, B씨는 혈연상 가족이 아니었다. 이미 생물학적 부모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A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살아 계실 때 뵙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는 상실된 60년이,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의 격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도쿄 지방법원은 병원의 중대한 과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판결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금전적 배상이 아니었다. 법원은 판결했다. "이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의 궤도를 비가역적으로 바꾸어버린 본질적 권리 침해이다." A씨는 태어나자마자 누려야 했던 가정적 배경, 교육, 사회적 자본, 정체성 자체를 잃었다. 돈으로 복구될 수 없는 인간 존엄의 침해였고, 사회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이 판결은 국가와 공동체가 개인의 출발점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선언이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정말로 출발선이 전부일까? 가난하게 태어나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스타벅스 전 CEO 하워드 슐츠는 뉴욕 빈민가 출신으로, 스포츠 장학금을 통해 대학에 진학했고 결국 세계적 기업을 이끌었다. 반대로, 부유한 환경에서 방탕하게 살아 몰락한 이들도 있다. 같은 가정에서 자란 형제자매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경우도 많다. 노력, 끈기, 태도, 인간관계, 운—삶을 결정짓는 요소는 실로 다양하다. 그러니 결국 개인의 선택이 중요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이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애초에 선택의 기회조차 받지 못한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단어 자체가 허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장벽은 생각보다 높고, 조용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다. A씨는 올라갈 계단 자체가 없었다. 그는 실패할 자유조차 갖지 못한 채, '버텨내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물론 일본의 교육 시스템, 고용 구조, 사회적 경직성 같은 구조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훨씬 근본적이다. 어떤 출발선은 사람의 가능성을 태어나기도 전에 봉인해 버린다고.


기회의 사다리는 스스로 자라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 문이 처음부터 투명하게 닫혀 있었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벽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그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벽을 문이라 믿고 살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는 묻고 실천해야 한다. 그 닫힌 문 앞에 사회가 놓아야 할 사다리는 무엇인가.



우선 교육이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가장 근본적인 열쇠다. 따라서 국가는 무상보육과 무상교육의 전면 확대,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 저소득층 대상 조기 개입 프로그램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 지지, 역할 모델과의 연결, 멘토링 프로그램의 제도화도 필수적이다. 아이들의 배경이 아니라 가능성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공공 도서관, 문화예술교육, 방과 후 프로그램과 같은 공공 인프라의 확대는 그 자체로 기회의 문을 넓히는 일이다. 대학 진학률만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꿈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정책이 추구해야 할 지점이다.


기회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당당하게 질문해야 한다. 지금 이 사회는 누구에게 선택지를 주고, 누구에게 그것을 앗아가는가. 그 물음에 답하려는 노력이, 곧 공동체가 개인의 출발선에 대해 지는 윤리적 책임일 것이다.


개인이 기회의 장벽을 깨뜨릴 수 있는가



#기회의불평등

#출발선의차이

#교육격차

#사회적장벽

#복지정책

#기회의사다리

#구조적불평등

#조기개입

#사회정의

#인간존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