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의 이상향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여기에서

by 이천우

아미타불의 이상향은 어디에 있는가


부석사와 무량수전의 전경


아미타불의 이상향은 어디에 있을까. 그 질문을 품은 채 떠난 가을날의 나들이였다. 아침 8시, DCU 유스티노 캠퍼스 주차장에는 한중친선협회 회원들과 가톨릭교리신학원 수강생, 지인들까지 마흔여 명 남짓 모였다. 지도 신부님의 짧은 기도에 이어 “오늘은 부석사에서 무섬마을까지, 불국정토와 우리나라 고택 마을을 한 번에 둘러보는 코스입니다”라는 설명이 전해지자, 버스 안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창가에 나란히 앉은 우리 부부는 “오늘(11월 15일), 마음에 깊은 가을의 산책로 하나 그려 오자”며 새벽을 헤치고 집을 나섰다.


무량수전 앞, 계단을 오르며 되묻는 질문


부석사 주차장에 도착하자 봉황산 자락을 물들인 늦가을 단풍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과 안양루로 이어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지만, 층층이 쌓인 석축과 돌계단 덕에 그 길은 마치 작고 경건한 성전으로 향하는 순례 같았다. 지도신부님께서 설명해 주신 대로, 신라인들은 산을 깎기보다는 흐름을 따르며 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그래서 한 계단, 한 계단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수행의 호흡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계단을 넘자 시야가 트이며 무량수전과 석등이 나란히 서 있었다. 단정한 배흘림기둥과 절제된 공포 양식 덕에, 오래된 법당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으로 "나 여기 오래 서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무량수전은 끝없는 생명의 부처,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 극락왕생을 기도하며 염불을 드리는 이들도 있었고, 사진을 찍으며 순간의 즐거움을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부부도 그 속에서 웃으며 아름다운 광경을 담았다.


그러나 석등 곁에 머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물음이 떠올랐다. 아미타불의 이상향은 정말 저 멀리 있는 세계에만 있을까. 어쩌면 지금, 이 숨 가쁜 계단과 오래된 기둥들 사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퍼지는 이 마당 속에도 그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닐까.


선묘의 얼굴, 우리 부부의 마음


몇 번 부석사를 견학했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던 선묘각. 그러나 이날은 신부님의 권유로 꼭 들러야 할 곳이 되었다. 당나라에서 의상대사를 흠모했던 선묘는 용이 되어 사찰 건립을 방해하던 무리를 물리치고, 떠 있는 바위를 받쳤다는 전설로 알려져 있다.


화폭 속 선묘는 단순히 남승을 연모한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품은 사랑을 집착으로 흐르게 하지 않고, 도량을 지키는 힘으로 바꿔낸 존재였다. 마음을 부정하지 않되, 그 정서를 끝내 공덕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선묘는 "당신의 가장 간절한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고 조용히 묻는 것 같았다. 사랑이 때로는 나를 옭아매지만, 타인을 살리고 길을 여는 힘으로 변할 때, 그것은 위대한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아미타불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선묘의 일편단심은 연정을 넘어,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는 결단’에 가까웠다. 부석사의 석축이 산의 흐름을 억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았듯, 공동체가 오래 함께 산다는 것도 서로의 굴곡을 품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섬마을, 육지 속의 정토


버스가 부석사를 내려와 내성천을 따라 달리자 ‘육지 속의 섬 무섬마을’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태백산과 소백산에서 흘러온 물길이 태극 문양을 그리며 휘감아 도는 이 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같다고 한다.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한때 마을로 들어가는 단 하나의 통로였다. 길이 150m, 폭 30cm 남짓한 이 좁은 다리는 한 사람씩만 건널 수 있었고, 누군가 건너고 있다면 상대는 조용히 기다려야 했다. 서로를 밀면 함께 물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다리 위에는 늘 배려와 양보의 공기가 머물렀던 것이다.


우리 부부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심스레 다리를 건넜다. 발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흔들리는 발끝, 정신을 가다듬으며 균형을 잡은 손.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옛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힘든 시절일수록, 이렇게 서로를 붙잡고 한 줄 위를 건너야 하는 거구나.” 다리 건너 바라본 외나무다리는, 더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삶의 태도, 관계의 길, 함께 건너온 시간의 증표처럼 느껴졌다.





중국어 미사와 첼로의 화음

하루의 마지막 일정은 DCU 신학대학 경당에서 드린 미사였다. 장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바친 미사는 지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번갈아 흐르고, 첼로 선율이 공간을 채우는 가운데, 무량수전의 석등과 선묘의 미소, 무섬마을의 그림자들이 하나의 음표처럼 마음속에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적 상징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작고 온전한 정토처럼 느껴졌다. 미사를 마친 뒤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석사에서는 오래된 사랑의 전설을 보았고, 성당에서는 오늘의 따뜻한 우정을 느꼈어요.” 시간과 공간, 언어와 신앙이 한데 어우러진 하루를 경험했으니, 이는 경계를 넘는 화해와 만남의 장이었다고 생각된다.


다시 돌아온 작은 정토


저녁 자리와 뒷풀이를 마친 뒤,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창원에 향했다. 이어 다시 차를 몰아 진해 집에 도착했다. 자정 무렵이지만 문을 열자, 종일 집을 지키던 반려견 사랑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나는 조용히 그 아이를 안고 속삭였다. “우리 오늘 부석사를 다녀왔어, 무섬마을도.”


생각해 보면, 정토는 어딘가 먼 세계가 아닌 바로 여기인지도 모른다. 부석사 석축 위에서, 무섬마을 다리 위에서, 다국적 미사와 따뜻한 식사 자리에서, 그리고 지금 사랑이의 체온 속에서. 지금 거처하는 여기에서, 마음의 소음이 사라지는 그 고요하고 따뜻한 순간들이 바로 정토 아닐까. 그 잠깐의 배려와 웃음들이 쌓여 이루는 세계가 바로 우리가 만난 아미타불의 이상향이 아니었을까. 오늘 우리 부부는, 작지만 분명한 정토의 세계를 확인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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