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발에 얽힌 애환(哀歡)

평발에 대한 불만과 감사

by 이천우

내 평발에 얽힌 애환(哀歡)


내 발과 다리가 받쳐줬기에 교수로 살았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편평족이었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 나며 이름 하나만을 받지만, 나는 거기에 덧붙여 평생을 함께할 불청객 하나, ‘다리와 발의 고통’을 추가로 건네받았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다리와 발이 편한 날이 거의 없었다. 들판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친구들과 놀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엄마, 발이 아파”를 먼저 외치는 아이였다. 그러면 엄마는 “또 그러냐” 한마디 하시면서도 늘 같은 손길로 발바닥과 종아리를 천천히 주물러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병원도, 물리치료실도 아닌, 우리 집만의 1호 ‘평발 전담 클리닉’이었다.


내 다리의 항의는 중·고등학교 시절 더 또렷해졌다.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는 날이면, 교장 선생님 훈시는 잘 들리지 않고 발부터 꿍얼거렸다. 한 10분쯤 지나면 발바닥이 서서히 불편해지고 종아리 안쪽이 저릿저릿해졌다. 친구들은 옆에서 키득거리며 숙제 얘기, 선생님 뒷담화를 나누는데, 나는 그 틈에 몰래 다리를 뒤틀고 발을 문질렀다. 그때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 나는 오래 서 있는 일을 하면 안 되겠구나.”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나중에 해군장교와 대학교수를 하게 된다. 둘 다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OCS 훈련소 연병장에서 훈시를 들을 때도, 제일 먼저 나에게 항의하는 건 윗사람의 훈시가 아니라 내 발이었다. 꼼짝 않고 가만히 서 있는 10분 이상의 시간은 고문이었지만, 구보를 하거나 총검술을 할 때는 오히려 덜 아팠다. 움직이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고, 멈추면 곧장 다리로부터 불만이 접수되었다. 내 다리와 발은 나에게 이렇게 다그쳤다. “뛰는 건 이해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오래 서 있는 건 근로기준법 위반이야.”

대학교수가 된 뒤에도 다리와 발은 꾸준히 노동쟁의를 이어 갔다. 강의실에서 90분 수업을 마치고 나면, 머리보다 먼저 지친 건 두 다리였다. 연구실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벅지와 종아리가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그래서 연구실 한쪽에 작은 소파를 들여놓고 틈만 나면 다리를 올려 주물렀다. 허리까지 삐걱거리기 시작하자 급기야 독일제 하이팩 의자까지 들여왔다. 가격이 꽤 나갔지만, “그래, 평생 같이 살아야 할 다리인데 이 정도 투자는 해 줘야지”라는 마음이었다.


집에서는 ‘가정용 물리치료’를 개발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퇴근해 오면 용돈을 조금 더 쥐여 주고 이렇게 제안했다. “아빠, 오늘 특급으로 주물러줘. 발 밟기 10분.” 그러면 두 딸의 작은 발이 내 발등과 발바닥을 수시로 꾹꾹 밟으며 올라탔다. 묵직하게 쌓인 피로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 그제야 온몸이 “아, 살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 아내와 딸들은 “우리 집 아빠 다리는 불량품이야, 불량품”이라고 깔깔 웃곤 했다. 나도 웃으며 받아쳤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이 꽤 정확한 진단처럼 느껴졌다. ‘AS도 안 되는 평생형 불량품’으로.


편평족에게 진짜 적은 오래 서 있는 시간과 더불어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이다. 장거리 기차나 버스를 타고 몇 시간 동안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있으면, 다리는 어느 순간부터 몸 일부가 아니라 그냥 짐짝이 된다. 종아리는 뻐근하게 굳어진 기둥이 되고, 발목 아래는 피가 고이는 저수지 같아진다. 비행기는 말할 것도 없다. 좁은 좌석에 몸을 접어 넣고 몇 시간, 길게는 열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 장거리 비행은 거의 “편평족 인내 테스트”에 가깝다. 답답함을 잊어보겠다고 와인을 몇 잔 더 마셨다가, 비행기 안에서 구토를 하고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결심했다. “두세 시간 넘는 비행은 웬만하면 하지 말자. 굳이 비싼 비행기값 내고 몸을 고문할 필요는 없다.”고.


누군가는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하고 여행해야지, 세상에 안 힘든 여행이 어디 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다리와 발에게 그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총파업 직전의 경고’로 나타난다. 나이가 들수록 이 경고는 더 자주, 더 크게 울린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장거리 여행 제안을 받으면, 여행지보다 먼저 비행시간과 이동 시간을 보고 대부분 사양한다.


칠십을 훌쩍 넘긴 지금, 발 관리와 족욕은 내 하루를 짜는 중요한 일정이 되었다. 두 시간쯤 걷거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일어나면, 복숭아뼈 주변이 어김없이 찌릿하게 신호를 보낸다. 그럴 때면 솔직히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야, 진짜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같이 산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적응이 안 돼?” 그러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바꿔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 주니까 고맙지. 아무 말도 안 하다가 한 번에 고장 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나는 가끔 내 다리와 발을 향해 이런 모순된 말을 동시에 건넨다. “야, 너희 진짜 까다롭게 군다. 그런데 그 덕분에 내가 내 몸을 함부로 못 써. 그러니까… 짜증 나지만 고맙다.” 들판에서 뛰놀던 코흘리개 시절부터, 군 훈련소, 대학 강의실,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 공항과 낯선 도시의 골목까지, 이 불량품 같은 다리와 발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 주었다. 불량품이긴 해도, 고장 나지 않고 여기까지 묵묵히 견뎌 준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약 내 다리와 발이 처음부터 아무 문제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덜 조심하고, 덜 돌아보며 살았을 것이다. 아팠기에 멈췄고, 멈췄기에 내 발과 다리를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됐다. 오히려 이 불편함이 나에게 휴식의 신호를 먼저 알려 주었고, 몸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누군가의 손길에 감사하게 만들었고,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서 있는 일상’조차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 불량 다리 덕분에 매번 조금씩 더 섬세해지고, 조금씩 더 따뜻해진 셈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다리를 볼 때마다, 살짝 투덜거리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너희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너희를 꽤 혹사시켰다.” 서운함과 고마움이 매일 같이 티격태격 부딪히지만, 그게 아마도 평생 동행해 온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아닌가 싶다.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고 두 발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불편해서 자꾸 티 내 주는 것도 고맙고, 그래도 아직까지 나를 들고 일어나 주는 것도 고맙다. 불량품이면 어떠냐, 너희 덕분에 여기까지 잘 걸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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