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리더는

리더의 모습

by 이천우

우리가 바라는 리더는


진정한 리더는 책임을 완수하며 구성원들을 보듬는 사람이다.



우리는 살아오며 수많은 리더를 마주해 왔다. 학교에서는 반장과 선생님을, 직장에서는 팀장과 임원을, 지역 사회에서는 통장과 입주자대표를 자연스럽게 리더라 불러왔다. 겉으로 보기엔 리더가 넘쳐나는 시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좋은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자주 침묵하게 된다. 카리스마, 유려한 말솜씨, 강한 추진력, 탁월한 성과를 언급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 리더는 따로 있다. 앞에 나서 말하기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감당하던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리더십은 직책이 아니다. 팀장이나 부장이 되는 순간 리더가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 진짜 리더십의 시험이 시작된다. 회의가 길어지며 분위기가 무거워질 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건네고, 정리되지 않은 회의실을 돌아보며 빠진 전달사항을 점검하는 사람. 그의 명함에는 '실무 담당자'라고 적혀 있을지라도, 그의 태도는 이미 리더의 언어를 품고 있다.


이러한 리더십은 일상 속 작지만 인상 깊은 장면에서 빛난다. 예컨대, 장마 후 흙탕물이 범벅된 운동장을 보고, 누구보다 먼저 장화를 신고 나선 초등학교 교장. 비가 채 그치지도 않은 운동장에서 한 시간 넘게 쓰레기를 줍고, 배수구를 막은 낙엽을 손으로 치웠다. 이를 본 교사들이 자연스레 뒤따랐고,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우리 학교를 지키는 날' 캠페인을 시작했다. “치워라”는 지시보다 몸을 굽힌 행동 하나가 더 큰 파장을 낳은 순간이었다.


또한, 프로젝트 마감을 앞둔 늦은 밤, 자신의 업무를 끝냈다며 먼저 퇴근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동료의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며 빠진 부분을 챙기고, 인쇄 분량까지 다시 점검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당신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기억되는 사람이다.


친구들과의 여행 준비에서도 유사한 모습은 반복된다. 모두가 먹고 싶은 음식과 가고 싶은 장소를 말할 때, 정작 숙소를 알아보고 교통편을 확인하며 경비를 정리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일정이 틀어졌을 때 나오는 불만과 눈치를 감당하는 것도 결국 그다. 묵묵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마지막까지 계좌 이체를 확인하는 사람, 바로 그가 모임의 리더다.


지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산의 한 여고 동창회에서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행사에 참석하면 회장과 임원들이 뒤로 빠지며 조용히 식사자리와 선물을 양보한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 따로 모여 간단한 식사로 서로의 수고를 나눈다. 앞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이들이 먼저 한 걸음 물러서는 이런 모습은, ‘누가 더 많이 누릴 것인가’보다 ‘누가 먼저 책임을 나눌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는 리더십의 철학을 보여준다.



이처럼 겉보기엔 전혀 다른 풍경 같지만, 본질은 같은 리더십의 실례들이다. 자리를 양보하는 임원, 동료를 도와주는 직원, 캠페인을 만든 아이들, 여행을 준비하는 친구. 이들은 모두 먼저 움직이고, 조용히 책임을 나누며 공동체를 이끌었다. 이는 리더십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 속 태도이자 결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리더십을 예전만큼 자주 마주하긴 어렵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일상적인 흐름이 되고, “남을 챙기다간 손해 본다”는 말이 농담처럼 오간다. 누군가 먼저 움직이면 칭찬보다 걱정이 앞선다. ‘이용당하지 않을까’, ‘저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건 아닐까’라는 불신이 배어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다. 과거의 "헌신"과 "희생"이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는 수단이던 기억 때문이다. "리더십을 보여 달라"는 말이, 사실상 "추가 수당 없이 더 해 달라"는 요청처럼 들리던 시대를 우리는 통과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세운다. 정시에 칼퇴근하고, 정해진 업무 이상은 넘보지 않는다. 이 모습은 착취에 대한 방어이자, 더 이상 무턱대고 헌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표현이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요구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 마음을 숨기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생은 미덕’이라는 단순한 도식이 아니라, 건강한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선택이다. 나를 소모시키지 않으면서도, 나와 우리 모두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책임감이다.


시선을 세계로 넓혀보자. 유엔 사무총장직에 여성 리더를 세우자는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인권과 개발을 오랫동안 고민해 온 미첼 바첼레트(전 칠레 대통령)와 레베카 그린스펀(전 코스타리카 부통령)의 도전은 단순한 경력 경쟁이 아니라, 이 시대가 리더에게 어떤 얼굴을 기대하는지를 묻는 움직임이다.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는 또 다른 유형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는 회의 후 곧장 숙소로 돌아가 새벽까지 자료를 검토하며, 술자리보다는 책임감과 준비에 집중한다. 철저한 성실함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리더’가 과연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함께 밥을 나누며 마음을 여는 시간 또한 리더십의 본질이라는 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리더십의 다양한 모습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향해 가고 있다.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그 질문은 다시 우리 각자에게로 돌아온다.


리더의 자리에 선 사람들은 종종 지친다. “왜 늘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하지?”라는 생각이 자주 떠오르고, 정작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누구나 물러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저는 리더가 아니어서요”, “그런 자리는 제 몫이 아닙니다”라는 말 뒤에 숨는다. 이 말은 겸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책임으로부터의 거리 두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질문은 “내가 리더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떤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설 것인가”이다.


리더십은 직함과 함께 주어지는 훈장이 아니다. 회의실의 맨 끝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사소한 일이라도 “누군가 하겠지”라 넘기지 않으며, 조금 더 피곤해지는 선택 앞에서도 억울함이 아닌 책임감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 모습이 리더십의 시작이 아닐까.


하루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는 능력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한 장면 속에서 “이번엔 나부터 움직여 볼까”라는 선택을 쌓아가는 태도로. 리더십은 결국 그런 사람의 결이다. 우리가 묻는 것은 직책의 유무가 아니라, 이 피로하고 냉소적인 시대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어떤 사람 곁에 서 있을 때 타인에게도 숨통이 트일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좋은 리더는 먼저 책임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책임이 누군가의 일방적 소모가 되지 않도록, 함께 나눌 수 있는지를 살피는 사람이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동료의, 친구의, 혹은 가족의 입에서 이렇게 말이 흘러나온다면, 그는 이미 자기 자리에서 충분히 리더로 살아온 것이다.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오늘 하루, 내 앞에 놓인 작은 선택들 속에서 이 문장을 한 번 떠올려 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도 다정한 리더십의 연습일지 모른다.


리더는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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