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기

나다운 삶

by 이천우

나답게 살기


노후 반려견과 친구로 살며


노년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나답게 살아왔는가.”

젊은 시절에는 그런 물음을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일상의 무게, 타인의 기대, 주어진 역할들로 삶의 앞자리가 빽빽했기 때문이다. ‘나다움’이라는 말은 늘 한참 뒤로 밀려 있었고, 그렇게 나 아닌 채로 앞을 보고 달려온 것 같다. 그러나 속도가 느려진 노후에 이르자, 조용한 오후나 길어진 새벽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묵은 목소리 하나가 깨어난다. 이제라도 내가 바라던 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 질문 앞에서 떠오른 것은 ‘계영배(戒盈杯)’라는 말이었다. 가득 채우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넘쳐버리는 잔이란 의미다. 삶에도 그런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무엇이든 넘치면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건강도, 돈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리고 자신의 역할마저도. 노년은 더 이상 버텨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멈출 수 있는 시점’을 분별하는 시기다. 끝까지 버티는 힘보다 중요한 건, 어느 지점에서 내려놓을지를 아는 감각이다.



그러다 또 하나의 단어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카르마(karma)’, 산스크리트어로서 ‘의도 있는 행위가 남긴 흔적’을 뜻하는 말이다. 노년에 들면 자신이 살았던 흔적들이 조금씩 삶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시기다. 어떤 관계는 한 통의 전화로도 이어지고, 어떤 인연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몇 해째 소식도 모른다. 그 차이는 결국 내가 어떤 말투로,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의 삶은 이 같은 내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이룬 결과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처럼’을 고집하는 순간, 나다움은 멀어진다. 산에 올랐을 때, 정상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인다. 예전처럼 정상을 찍고 능선도 타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 몸이 편안함을 느끼는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 이제는 더 나다운 결정이다. 하루 일정을 비워 두고, 약에 의존하지 않고, 나를 잘 아는 나 스스로가 내게 휴식을 허락해 주는 것 — 그것이 내 삶과 몸에 대한 깊은 예의가 아닌가 싶다.


돈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모으지 못했다는 아쉬움, 한 번에 풀어 쓰고 싶은 충동, 이런 생각이 불안의 얼굴을 하고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조용히 통장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 순간부터 돈은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닌, 내가 지켜가고 싶은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바뀐다. 건강을 돌보고, 무언가를 배우고, 누군가와 밥을 나누는 일 — 그런 데 쓰일 때, 돈은 가장 따뜻한 에너지가 된다.


인간관계 속에서의 나다움은 더 섬세한 지혜를 요구한다. 자녀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고, 어떤 모임에서 괜찮은 어른으로 보이고 싶은 바람은 자연스럽다. 삶의 경험이 쌓였고, 그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묻지 않은 조언은, 이미 넘친 말이란 사실을. 아무리 진심일지라도, 상대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말은 간섭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도움을 주려던 마음이 오히려 관계를 경직시키기도 한다.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덧씌우기보다는, 짧게 나누고, 선택은 그들에게 맡기는 태도 — 그런 행동에서야말로 깊은 신뢰가 자리하게 된다.


동창과 같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모임에서도 그런 연습이 필요하다. 자산 이야기, 자녀 이야기 앞에서 “나도 뭔가 덧붙여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유혹을 내려놓고, 서로의 근황을 진심으로 묻고, 서로 따뜻하게 느꼈던 지난 시간을 조심스럽게 나누는 자리를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비켜서도 이 모임은 아름답게 굴러갈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자리를 비워두는 리더십의 품격이 완성된다.


정보화 사회를 살면서 의도치 않은 감정과 SNS 등에서 얻게 되는 정보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정치 뉴스, 갈등 기사, 자극적인 정보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을 흔든다. 그럴 때는 스스로 내 안의 선을 긋는다. “오늘은 여기까지.”로.


살아오면서 문득 떠오르는 후회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의 실수나 선택 앞에서 그 모든 시간을 통째로 부정하기보다는 이렇게 말해본다. “그때의 나도 그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지 모른다.” 이것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는 다른 선택을 하겠다는 조용한 선언으로 자리 잡는다.



노년의 나다움은 결국, 거창한 도약이 아니라 작고 단단한 선택들에서 드러난다. 조금 더 할 수 있을 때 한 걸음 덜 내딛고, 더 말하고 싶을 때 한마디 덜 말하고. 서운함을 안고 기다리기보다 먼저 안부 전화를 거는 행동으로. 그러한 조용한 행동들이 모여, 내 말투, 내 표정,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관계의 온도를 바꾸는 씨앗이 된다.


마침내, 나는 다시 나를 선택한다. 나다운 삶이란, 내 삶을 내가 만들어 왔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넘치지 않게 스스로를 붙잡는 계영배의 마음을 잃지 않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내 모습이 된다는 카르마의 감각만 잊지 않는다면, 노년의 하루하루는 더 이상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 삶을 마침내 나답게 완성해가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는 것이다.


주어진대로 만족하며 즐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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