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는 그런 물음을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일상의 무게, 타인의 기대, 주어진 역할들로 삶의 앞자리가 빽빽했기 때문이다. ‘나다움’이라는 말은 늘 한참 뒤로 밀려 있었고, 그렇게 나 아닌 채로 앞을 보고 달려온 것 같다. 그러나 속도가 느려진 노후에 이르자, 조용한 오후나 길어진 새벽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묵은 목소리 하나가 깨어난다. 이제라도 내가 바라던 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 질문 앞에서 떠오른 것은 ‘계영배(戒盈杯)’라는 말이었다. 가득 채우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넘쳐버리는 잔이란 의미다. 삶에도 그런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무엇이든 넘치면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건강도, 돈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리고 자신의 역할마저도. 노년은 더 이상 버텨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멈출 수 있는 시점’을 분별하는 시기다. 끝까지 버티는 힘보다 중요한 건, 어느 지점에서 내려놓을지를 아는 감각이다.
그러다 또 하나의 단어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카르마(karma)’, 산스크리트어로서 ‘의도 있는 행위가 남긴 흔적’을 뜻하는 말이다. 노년에 들면 자신이 살았던 흔적들이 조금씩 삶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시기다. 어떤 관계는 한 통의 전화로도 이어지고, 어떤 인연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몇 해째 소식도 모른다. 그 차이는 결국 내가 어떤 말투로,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의 삶은 이 같은 내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이룬 결과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처럼’을 고집하는 순간, 나다움은 멀어진다. 산에 올랐을 때, 정상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인다. 예전처럼 정상을 찍고 능선도 타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 몸이 편안함을 느끼는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 이제는 더 나다운 결정이다. 하루 일정을 비워 두고, 약에 의존하지 않고, 나를 잘 아는 나 스스로가 내게 휴식을 허락해 주는 것 — 그것이 내 삶과 몸에 대한 깊은 예의가 아닌가 싶다.
돈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모으지 못했다는 아쉬움, 한 번에 풀어 쓰고 싶은 충동, 이런 생각이 불안의 얼굴을 하고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조용히 통장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 순간부터 돈은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닌, 내가 지켜가고 싶은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바뀐다. 건강을 돌보고, 무언가를 배우고, 누군가와 밥을 나누는 일 — 그런 데 쓰일 때, 돈은 가장 따뜻한 에너지가 된다.
인간관계 속에서의 나다움은 더 섬세한 지혜를 요구한다. 자녀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고, 어떤 모임에서 괜찮은 어른으로 보이고 싶은 바람은 자연스럽다. 삶의 경험이 쌓였고, 그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묻지 않은 조언은, 이미 넘친 말이란 사실을. 아무리 진심일지라도, 상대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말은 간섭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도움을 주려던 마음이 오히려 관계를 경직시키기도 한다.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덧씌우기보다는, 짧게 나누고, 선택은 그들에게 맡기는 태도 — 그런 행동에서야말로 깊은 신뢰가 자리하게 된다.
동창과 같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모임에서도 그런 연습이 필요하다. 자산 이야기, 자녀 이야기 앞에서 “나도 뭔가 덧붙여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유혹을 내려놓고, 서로의 근황을 진심으로 묻고, 서로 따뜻하게 느꼈던 지난 시간을 조심스럽게 나누는 자리를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비켜서도 이 모임은 아름답게 굴러갈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자리를 비워두는 리더십의 품격이 완성된다.
정보화 사회를 살면서 의도치 않은 감정과 SNS 등에서 얻게 되는 정보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정치 뉴스, 갈등 기사, 자극적인 정보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을 흔든다. 그럴 때는 스스로 내 안의 선을 긋는다. “오늘은 여기까지.”로.
살아오면서 문득 떠오르는 후회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의 실수나 선택 앞에서 그 모든 시간을 통째로 부정하기보다는 이렇게 말해본다. “그때의 나도 그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지 모른다.” 이것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는 다른 선택을 하겠다는 조용한 선언으로 자리 잡는다.
노년의 나다움은 결국, 거창한 도약이 아니라 작고 단단한 선택들에서 드러난다. 조금 더 할 수 있을 때 한 걸음 덜 내딛고, 더 말하고 싶을 때 한마디 덜 말하고. 서운함을 안고 기다리기보다 먼저 안부 전화를 거는 행동으로. 그러한 조용한 행동들이 모여, 내 말투, 내 표정,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관계의 온도를 바꾸는 씨앗이 된다.
마침내, 나는 다시 나를 선택한다. 나다운 삶이란, 내 삶을 내가 만들어 왔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넘치지 않게 스스로를 붙잡는 계영배의 마음을 잃지 않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내 모습이 된다는 카르마의 감각만 잊지 않는다면, 노년의 하루하루는 더 이상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 삶을 마침내 나답게 완성해가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