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부부의 속도를 맞춘 길
자연을 순례하면서 기도하며
12월 31일 새벽, 우리 부부는 동시에 알람에 눈을 떴다. 평소 같으면 "조금만 더"를 외치며 침대에 머물렀을 텐데, 이날은 달랐다. 정년퇴직 이후 아침은 종종 불안했다. 할 일이 없다는 자유는 잠깐 좋았지만, 그 자유는 금세 허전함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번 성 이시돌 제주자연순례 피정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시간이었다.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는가.“
김해공항은 새벽인데도 사람들의 활기가 넘쳤다. 캐리어 끄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 여행 전 설렘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도 그 흐름 안에 있었지만, 마음의 결은 달랐다. 이제는 "재밌게 놀자"보다 "무리하지 말자, 괜찮겠지?"가 먼저였다.
그런데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이번 일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걷고, 기도하고, 한 해를 정리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피정이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분명했기에 기대는 더 단단했다.
제주에 도착해 피정의 집에 짐을 풀고 나서야,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다는 실감이 났다. 낯선 공간은 생각을 새롭게 정돈하게 했고, "이제 내 속도로 걸어도 된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점심식사 후, 먼저 용수성지와 정난주 마리아 묘를 찾았다. 연말의 성지는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오히려 마음을 또렷하게 했다. 젊을 땐 고요함이 어색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감각이 고요함에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묘 앞에 서자 기도보다 고백이 먼저 나왔다.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감정처럼 느껴졌다.
저녁, 송년 미사 후 조용한 송년 파티가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과 와인잔을 조심스럽게 부딪히며 나누는 눈빛이 더 깊은 인사를 대신했다. 와인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마음의 매듭이 하나씩 풀렸다. "2025년을 잘 버티고 여기까지 왔네요." 그 말이 잔 속에 담긴 듯했다.
노후의 부부는 큰 싸움보다 사소한 짜증이 더 잦아진다.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예민해지고, 피곤하면 말끝이 날카로워진다. 작은 불편들이 쌓여 서로를 조심하게 된다. 그런데 이날 저녁은 달랐다. 공동체의 절제된 온기와 침묵의 리듬이 우리 사이의 긴장을 천천히 녹여주었다. 우리는 말보다 먼저 공기를 함께 나누며, 조용히 한 해를 정리할 수 있었다.
1월 1일 새벽, 송악산 기슭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살을 에는 바람 속, 어둠이 서서히 빛으로 바뀌는 그 순간은 말보다 강렬했다. '빛이 온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은 다르다. 해는 떴지만 구름에 가려 회색빛이었다. 그 모습이 내 안의 흐릿함을 비추는 듯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 왜 이렇게 무덤덤할까?" "왜 하느님보다 통장 잔고와 건강검진표가 더 중요하게 느껴질까?" 질문들이 올라왔다. 그 질문이야말로, 우리에겐 은총이었다.
밤의 성시간은 낮의 걸음을 내면으로 되돌리는 시간이었다. 걷기는 바깥을 향하지만, 침묵은 나를 마주하게 한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떠올렸다. 평생 함께 살아왔지만, 상대의 두려움을 묻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요즘 당신은 무엇을 비우고 싶어?"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준비할 수 있을까. 노후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으면 멀어지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보다 먼저, 함께 앉아 있는 법을 다시 배웠다.
1월 2일, 눈 덮인 곶자왈 도립공원을 걸었다. 발밑은 미끄럽고 공기는 차가웠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맞췄다. 젊었을 땐 누가 앞서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쪽이 빨라지면 다른 한쪽이 힘들어진다. 그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고마웠다. 늙는다는 건, 혼자 빨리 가는 능력을 내려놓고,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카멜리아 힐에서 본 함박눈 속 붉은 애기동백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눈보라 속에서도 시들지 않겠다는 듯 당당히 피어 있었다. 걷던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귀여운 눈사람은 웃음을 자아냈고, 그 순간은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안겨줬다. 우리는 "예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겨울 한복판에 피어난 그 생명은 우리의 지금과 닮아 있었다. 우리는 자꾸 잃은 것만 세고 있었지만, 그 꽃은 조용히 물었다. "남은 것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나는 신앙을 '결핍을 채우는 도구'처럼 붙들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신앙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 더 정확히는 필요 없는 속도를 내려놓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1월 3일 새벽, 성 글라라 관상 수녀원에서 새벽 미사로 하루를 열었다. 몸을 깨우는 일이 쉽지 않았고, 손끝은 시렸지만, 성당에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은 맑아졌다. 노후의 가장 큰 유혹은 '편안함'이다. 편안함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면 삶은 빠르게 무뎌진다. 이 새벽 미사는 말없이 알려주었다. "편안함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새미 은총의 동산을 순례하고,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며 3박 4일을 마무리했다. 일정은 빼곡했지만, 정신은 단순하고 맑아졌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 대신, "오늘 주어진 걸음을 충실히 딛자"는 마음이 또렷해졌다. 노후의 삶도 결국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을 잘 사는 데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제주공항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사람들 틈에 섞였다. 우리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변한 건 아니다. 집에 돌아가면 또 짜증도 내고 티격태격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번 연말연시, 우리 부부는 서로의 속도를 다시 맞춰보았다는 것이다. 자연을 따라 걷고, 기도와 침묵 속에서 중심을 다시 잡으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 정직함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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