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네 칸으로 나누는 이유

네 칸으로 나누고 완충하며

by 이천우

하루를 네 칸으로 나누는 이유


노년일수록 하루를 구조적으로 나눠 루틴하게


노년엔 같은 24시간인데 체감은 더 빠르다. 아침이 온 듯한데 금방 저녁이 된다. 시간이 정말 빨라진 건지, 내가 약해진 건지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대신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노년의 하루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전환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산책에서 수업으로, 수업에서 이동으로, 이동에서 집안일로 넘어갈 때마다 에너지가 달리는 느낌이 자주 든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감정으로 굴리지 않고 구조로 다룬다. 시간을 구조적으로 보내지 않으면 하루가 나를 잡아먹는 느낌이 든다.


겉으로 보면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삶을 유지하는 장치’를 운영하는 사람에 가깝다. 새벽에 일어나 침대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머리가 맑은 시간에 허리를 펴고, 어깨를 돌리고, 숨을 고른 후 책상에 앉아 AI 관련 등 자료를 정리한다. 그 다음에 아침 식사를 간단히 챙겨 먹고 웅산으로 향한다. 내 하루의 리듬은 여기서 잡힌다.


근래 자주 오르는 산길이 정비를 한답시고 파헤쳐졌다. 철제 받침대를 세우고 그 위로 데크로드를 깔았다. 석축을 쌓느라 나무들이 여러 포기 베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걷기 편해지겠지만, 나는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조금 씁쓸하다. 호젓함은 줄고, 산은 더 인공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그 편리함이 전부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안전성이 확보되니 노년의 몸으로 확실히 걷기 편하다. 내 루틴도 비슷하다. 편리함을 늘리면 생각이 줄고, 생각이 줄면 하루가 더 빨리 지나는 느낌이 든다. 나는 편리함을 최소화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산을 오르며 자주 스스로 묻는다. “오늘 어디까지가 내 몫인가.”


돌계단으로 이뤄진 계곡을 오를 때 작은 물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가려는 버릇이 잠깐 멈춘 듯한다. 오늘은 이만큼만 걷자, 라고 다짐한다. 마음이 앞서 무리를 하면 몸이 못 따라오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산을 내려오면서 자꾸만 다리가 무겁고,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러면 하루 전체가 무너진다. 노년의 욕심은 다음날까지 따라온다.


웅산에 오르며 들고양이 밥을 준 지 5년째다. 거창한 의미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사실 어떤 날엔 귀찮을 때도 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오늘은 그냥 쉬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간다. 고양이가 밥그릇 근처에서 서성이며 아는 체하는 날도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다. 그날은 내가 허공에 밥을 주는 기분이 든다. 이게 선행인지 습관인지 나도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런데 그 헷갈림이 오히려 나를 현실로 돌려놓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되, 내가 책임질 만큼은 지키고 있다는 감각을 가진다. 그렇게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작은 매듭 하나를 맺고 나면 내 하루를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느낌이 든다.


오후에는 반려견 사랑이와 평지를 천천히 걷는다. 사랑이는 노견이라 걸음이 느슨하다. 냄새 맡고 멈추고, 갑자기 방향을 틀고, 때로는 이유 없이 짖는다. 나는 그 리듬에 맞춘다. 그러면 내 조급함이 풀린다. 시간은 직선으로만 흘러가면 부서지기 쉽다. 멈춤과 기다림이 있어야 버틴다. 노년의 시간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멈추지 않으면 부서지고, 기다리지 않으면 지친다. 사랑이의 느슨한 걸음은 내 하루의 속도를 천천히 하는 장치다.


산책을 마치고 나는 풍호운동장으로 향한다. 철봉에 매달리기 같은 근력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젊을 때처럼 기록을 욕심내지 않는다. ‘생활을 지키려는 수준’까지만 한다. 내가 운동을 놓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노년엔 “했는지 안 했는지”가 흐릿해지는 순간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간다. 운동을 하면 몸이 즉시 반응한다. 숨이 차고 팔이 떨리면 ‘오늘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컨디션이 좋으면 좋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속 가능한 이만큼만 하자.” 오늘의 한계는 내일의 기초가 된다. 그걸 무시하면, 다음날이 빚으로 돌아온다.


바깥 일정이 있는 날은 더 바빠진다. 화요일 오후엔 ‘창원의집’에서 민요를 배운다. 수요일엔 DCU 유스티노 캠퍼스 신학 강좌를 수강하러 대구를 오간다. 이런 일정들은 내 달력을 단단히 고정해 주고 있다. 한편, 기차편을 예약해야 하고, 이동하는데 따른 부담도 크다. 버스나 기차 시간이 전부가 아니다. 준비 시간, 도착해 숨 고르는 시간, 돌아와 몸을 풀어주는 시간이 함께 필요하다. 젊을 때는 그런 걸 낭비라고 봤지만, 지금은 그 여백이 없으면 하루가 더 쉽게 흔들린다.


이동 중에 내가 초조해질 때가 있다. 늦을까 봐, 놓칠까 봐, 혹은 예전만 못하다는 걸 들킬까 봐 가끔 조급해진다. 그때 나는 멈춰서며 호흡을 조절한다. 시간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호흡은 잡히기 때문이다. 숨을 깊게 들이쉬면 흐름이 다시 내 쪽으로 온다. 노년의 불안은 대부분 “시간이 없다”가 아니라 “내가 버틸 틈이 없다”에서 시작된다는 걸, 나는 자주 이동 중에 깨닫는다.


병원 일정, 가족 일, 친구들과 만남 같은 변수가 생기면 루틴은 더 쉽게 흔들린다. 약속 하나가 기존 계획을 통째로 밀어내기도 한다. 그때 확실히 알게 된다. 노년의 시간 감각은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구조 문제라는 것을. 시간이 짧아진 게 아니라, 전환을 감당할 힘이 줄어든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하루가 조각조각 나뉠수록 더 짧게 느껴지는 이유다. 반대로 조각이 적으면 길게 느껴지지만, 그 길어짐이 느슨함으로 변해 무료해지는 날도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계속 오락가락하며 보낸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단순하게 네 칸으로 나눠 살려고 한다. 새벽~아침 / 오전 / 오후 / 저녁으로. 칸을 먼저 만들고 그 안에 일을 넣는다. 새벽엔 책상에 앉기. 오전 칸에는 웅산 등산과 들고양이 밥 주기. 오후 칸에는 사랑이와 산책하고 운동기구를 활용하기. 저녁 칸에는 정리나 독서처럼 몸을 덜 쓰는 일로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른 일정이 있는 날은 그 약속이 들어간 칸을 중심으로 나머지를 조정한다.


여기서 내가 세운 규칙이 하나 있다. 약속에는 ‘전후 완충’을 붙인다. 준비, 이동, 휴식까지 한 덩어리로 친다. 그래야 약속 하나가 하루 전체를 망치지 않는다. 나는 이 완충을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내 몸에 대한 예의고, 내일의 나에 대한 예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건 나만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내 또래가 공유하는 구조적 두려움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젊을 때의 시간 운영 방식’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게으른 사람이 되는 듯하고, 무능해진 것 같아 불안해진다. 그래서 무리해서 하루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노년의 몸은 그 무리를 정확히 기록해 둔다. 기록은 다음날 통증과 피로로 돌아온다. 그렇기에 그 기록을 존중하는 쪽이 더 성실한 삶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규칙은 “오늘 1개만 끝내기”다. 하루에 두세 가지를 완벽히 해내겠다는 욕심은 실패를 부르기 쉽다. 대부분은 하나로 끝내지만, 가끔은 욕심이 생긴다. 웅산도 가고 운동도 더 하고, 집에 와서 이것저것 정리까지 해버린 날이 있다. 그날 밤의 성취감은 짧고, 다음날의 피로는 길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 왜 그랬지’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그래서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 웅산 등산이든, 민요 수업이든, 신학 강좌든, 운동기구 활용이든. 완료 하나가 찍히면 시간 감각이 살아난다. “내가 오늘을 살았다”는 확인이 생긴다. 보람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오늘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조용한 확인에서 온다.


나는 바쁘게 살고 싶어서 구조를 만드는 게 아니다.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서다. 시간 자체가 줄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건 확실하다. 하루를 네 칸으로 나누고, 그중 한 칸에 완료 1개만 남기면, 빠르게 새는 하루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온다. 이제 나는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제대로”를 택한다. 그 선택이 내 삶을 과장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준다. 노년의 시간 윤리란, 결국 그 정도의 단단함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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