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대로 산다는 것
바다는 늘 그대로인데 ...
새해 첫날, 나는 제주도 송악산 기슭의 일출 명소로 향하는 관광버스를 탔다. 목적은 단순했다. 새해의 첫 장면을 내가 고르면, 나머지 한 해의 일도 덜 흔들릴 거라는 기분 때문이었다. 버스 안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목도리를 고쳐 매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아꼈다. 나 역시 그랬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향을 향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찬 바닷바람이 온몸을 두드렸다. 겹겹이 껴입었는데도 바람은 옷 사이로 파고들었고, 볼과 귀는 금세 얼얼해졌다. 파도는 거칠었지만, 사람들은 조용히 한 방향으로 서서 기다렸다. "곧 붉은 해가 떠오를 거야." 기대는 추위를 견디는 유일한 온기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작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덩어리진 구름이 수평선을 짓눌렀고, 우리는 그 뒤에서 퍼지는 희미한 빛만을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해는 여느 때처럼 떴고, 내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해를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일출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되는 시작'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고. 바람과 구름은 내 기대나 성실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자연은 순리대로 움직이고, 그 흐름은 내 계획과 상관이 없었다. 내 욕망의 실체를 그제야 분명히 마주했던 것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바다와 일출...
이날 이후, 나는 하나의 기준을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는 힘을 빼고, 바꿀 수 있는 것 앞에서는 도망치지 말자고. 하지만 살아가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흔히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쏟고, 정작 손댈 수 있는 일에는 미루거나 외면하며 하루를 흘려보낸다. 나 역시 수없이 그 흐름에 휩쓸리곤 했다.
뉴스를 보며 열을 올렸던 때가 떠오른다. 한 꼭지 기사에 기분이 뒤틀려 식탁에서 말이 거칠어지고,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불필요한 다른 기사를 뒤적였다. 그렇게 분노한 다음에 남는 건 대개 허탈함뿐이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내 하루만 흐트러졌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다짐한다. 세상을 등지지는 않되, 내 시간을 갉아먹는 방식으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이 태도는 몸을 대하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깨가 뻐근하거나 허리가 뻣뻣해질 때면, 나는 여전히 습관처럼 불안함이 먼저 떠 오른다. '이제 시작인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 당장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런 불안은 대개 나를 더 긴장시키고, 더 지치게 할 뿐이었다. 문제를 마주할 용기보다는, 문제를 키우는 상상에 갇히곤 했던 것이다.
50대 중반, 위암 수술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그 일을 '축복'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때때로 그 말은 불안을 덮는 포장지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수술은 내 삶의 전환점이었고, 이후로는 경고등처럼 늘 나를 일깨워왔다고. 식습관을 바꾸고, 조심성을 되찾으며, 나는 여전히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려고 애쓴다.
결국 순리대로 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는 불필요한 힘을 덜어내고, 바꿀 수 있는 것 앞에서는 손을 움직여 작은 실천이라도 이어가는 것이다. 일출을 보러 갔지만 해를 보지 못한 날, 나는 오히려 내 욕심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삶을 대하는 방식을 조금이라도 바꿔가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앞으로도 자주 흔들릴 것이다. 다만 그날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떠올린다면, 한 번은 더 숨을 고르게 될 것 같다. 오늘 내가 바꿀 수 있는 한 가지에만 마음을 모으기로 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해낸다. 거기까지 닿는 하루라면, 새해는 이미 잘 시작된 것 아닐까.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지금 손댈 수 있는 '그 한 가지'는 무엇일까. 나는 그 질문을 매일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질문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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