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베란다에 핀 사랑
해질 무렵, 우리 부부는 조용한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여는 순간, 집 안 가득 퍼진 낯선 향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그 향기, 마치 누군가 다녀간 듯한 고요한 흔적. 향기를 따라 베란다로 나가보니, 그곳에 한 송이 꽃이 나팔처럼 고운 자태를 펼치고 있었다. 하얗고도 정결한 꽃, 이름도 아름다운 천사의 나팔꽃이었다. 그날 이후, 꽃은 이내 둘, 셋으로 피어나며 집 안 구석구석을 천사의 숨결처럼 감싸기 시작했다.
이 꽃과의 인연은 십여 년 전, 어느 따뜻한 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부부가 장모님 댁에 문안을 드리러 갔던 날, 베란다 한켠에서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피어 있던 천사의 나팔꽃 한 그루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고, 장모님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꽃을 건네주셨다.
“이 꽃, 데려가서 키워 보렴. 잘만 돌보면 너희 집에서도 예쁘게 피어날 거야.”
그렇게 장모님의 손끝에서 건너온 화분 하나가 우리 집에 자리 잡았다. 특별한 정성을 들인 건 아니었다. 생각날 때마다 물을 주었고, 햇살 좋은 자리에 놓아두었을 뿐이다. 다행히도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고층의 남향이라 하루 종일 따스한 햇빛이 베란다를 넉넉히 비춘다. 계절을 불문하고 햇살이 너그럽게 드는 그 공간 덕분에, 꽃은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가며 해를 거듭할수록 풍성하게 자라났다. 어느새 여러 그루로 퍼져 베란다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제 천사의 나팔꽃은 단지 화초가 아니다. 마치 이 집의 주인처럼,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제 세상을 펼쳐나간다. 그 꽃이 피는 날이면 어쩐지 마음도 차분해지고, 하루가 한결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장모님의 손길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우리 삶 속으로 번져들며, 매일의 풍경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내는 이 꽃을 유난히 아낀다. 꽃이 활짝 피는 날이면 어김없이 말한다.
“이럴 땐 꼭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그 말에는 이유보다 믿음이 앞서 있고, 꽃의 피어남이 단지 식물의 순환이 아니라 삶에 내려앉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천사의 나팔꽃은 해질 무렵 피어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면 조용히 스러지는 짧고도 깊은 생애를 산다.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공간 전체를 감싸며, 마음의 결까지도 어루만져 준다. 물론 꽃의 모든 부분에는 독성이 있어 조심해야 하지만, 섬세한 손길과 따뜻한 시선으로 아끼며 기르면, 이 꽃은 말없이 많은 것을 전해주는 존재가 된다.
오늘도 베란다에서는 천사의 나팔꽃이 조용히 피어 있다. 그 향기 속에는 장모님의 미소와 아내의 따뜻한 말이 스며 있고,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조용히 쌓여 있다.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해마다 피어오르는 향기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다정히 이야기한다.
"여기, 사랑이 피어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