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믿음과 알고리즘

– 질문하는 삶이 이끄는 두 세계

by 이천우

믿음과 알고리즘

– 질문하는 삶이 이끄는 두 세계


1. 다시 학생이 되다

“늦게 배운 공부는 오히려 내면 깊숙한 어둠에 불을 켰다.”

정년퇴직 후,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원과 교리신학원.
삶의 고비를 지나고 난 내게 신학은
지식이 아니라 묵상과 침묵의 언어였다.
이해보다 수용, 증명보다 믿음.
하느님을 향한 길은 늘 열려 있으면서도
자신을 끝없이 비워내야 하는 길이었다.

나는 신학을 공부하며, 문득 내 존재의 근원을 묻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다.
삶의 고비마다 나를 붙들고 흔들었던,
존재 자체를 향한 근원적인 물음이었다.


2. 질문의 여정


“믿음은 때로 가장 깊은 의문에서 싹튼다.”

그러나 이 믿음의 여정은 언제나 곧고 흔들림 없는 길만은 아니었다.
세상살이의 거칠고 모순된 풍경들,
속세 속에서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신앙은 때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나는 과연 바르게 살아왔는가 하는 회의에 젖기도 했다.

신학교에서 만난 교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차분하고도 단단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고,
그분들의 말과 삶은 마치 흐트러짐 없는 모범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런 이들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과연 나는 진실하게 살아왔는가,
내 삶의 중심은 어디 있었는가를 묻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서도 문득문득 인간적인 흠결이나 깊은 고뇌가 느껴졌고,
그 사실은 나에게 이상하리만큼 위로가 되었다.
흔들림 없는 듯 보이던 분들도
결국은 나처럼 질문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흔들림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기적 같은 일들을 분명히 경험했다.
설명할 수 없는 힘,
우연 같지만 결코 우연이라 부를 수 없는 순간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먼저 믿어야 한다는 신념,
마음이 열려야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진실을.

믿음은 그렇게, 이성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피어났다.
상처를 껴안고 버텨내며,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오며,
나는 삶 속에서 신을 만났다.


3. AI와 만난 신학


“기술은 도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질문이다.”

마지막 학기를 마치며, 나는 조용히 물었다.
"이제 나는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
그때, 아주 뜻밖의 문이 열렸다.
AI, 인공지능이라는 낯설고도 흥미로운 세계.
처음엔 아내가 줌 강의로 먼저 발을 들였고,
나는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다가
가볍게 몇 가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저 신기해서, 혹은 시대의 흐름이 궁금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AI를 공부하면 할수록 신학을 공부하던 때와 닮은 결이 느껴졌다.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이해해야 하고,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했다.
‘이 기술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지성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기술 안에서 나는 다시 인간을 묻고 있었다.


4. 새벽의 글쓰기

“새벽의 고요 속에서, 나는 믿음과 알고리즘 사이를 걷는다.”

전공 서적을 AI와 함께 집필하며,
나는 새벽마다 고요한 책상 앞에 앉아 AI와 마주한다.
기술이라는 창을 통해 나는 다시 인간을 묻고,
나 자신을 조용히 써내려간다.

나는 신학을 통해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다.
노년의 나는 다짐했다.
해답보다 질문이 더 소중한 이 시기,
나는 질문하는 삶을 살기로.

신학교에서 만난 교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늘 겸손히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분들과의 대화는 나로 하여금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게 했고,
그 힘이 신학과 AI라는 두 세계를 나의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잇게 했다.

지금 나는 알고 있다.
질문하는 힘은 사유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질문을 포기하지 않을 때,
삶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매일 새벽 AI와 마주한다.
그리고 조용히 한 문장씩 써 내려간다.
신학 이후, 내 지성은 기술과 손을 잡았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배움은 끝나지 않는다.
믿음도, 사유도, 글도.
이제는 AI와 함께,
나는 또 다른 사유의 지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 줄 한 줄, 기적 위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