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다시 웅산을 오른다. 반려견을 품에 안고
그래도, 나는 바위를 민다
젊은 날의 나는 매일 바위를 밀며 살아왔다. 대학교수로 강의를 준비하고, 연구실에서 논문을 붙들며 밤을 지새웠다. 아내는 중등학교 교사로, 나와 함께 맞벌이 부부로 평생을 걸어왔다. 우리는 아이 셋을 낳았고, 각자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며 분주한 삶을 이어갔다. 학기 중엔 수업과 출장을 피해 아이들 하원 시간을 맞추려 분주했고, 주말에는 시험 채점과 연구 일정으로 하루가 짧기만 했다. 함께 웃으며 버텨낸 날도 많았지만, 때로는 서로의 고단함이 부딪쳐 다투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늘 그 바위 앞에서 함께 서 있었다.
그 모든 시간 가운데, 지금도 가슴에 선명하게 남은 하루가 있다. 셋째 아이를 낳자마자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그날. 아직 이름조차 온전히 불러보지 못한 아이를 품에서 떠나보낸 후, 우리 마음엔 오랫동안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 각자의 우울 속에 고요히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출근을 했고,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주었으며, 강의실과 교실로 돌아갔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지만, 그 무게를 함께 들어 올렸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두 딸들이 어릴 적, 늦은 밤 귀가한 나를 반기며 졸린 눈으로 그림일기를 펼쳐 보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숙제를 하지 않았다며 울먹이던 막내를 안아 달래고, 사춘기 큰아이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말을 걸지 못한 날도 있었다. 주말이면 공원에서 셋이 뛰어와 팔에 매달리고, 고소한 전을 부치던 아내 옆에서 아이들과 뒤엉켜 웃다 보면 부엌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말을 끊으며 하루를 털어놓던 풍경, 누군가 눈물을 흘리면 조용히 옆에 앉아주던 순간들. 그 모든 장면이 이제는 빛바랜 영상처럼 스쳐가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따뜻하게 살아 있다.
이제 나는 은퇴했고, 삶의 리듬은 바뀌었지만 바위를 미는 일은 여전히 계속된다. 매일 아침, 나는 열한 살 된 반려견과 함께 웅산에 오른다. 요즘은 녀석을 품에 안고 오를 때가 많다. 오르막을 오르며 심장은 요동치고, 숨은 가쁘게 차오르며, 땀은 속 셔츠를 흠뻑 적신다. 이따금 발을 멈추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 나이에, 왜 이렇게까지 힘을 들여야 하지?”
그러다 웅산 중턱의 임도에 다다르면, 마음이 맑아진다. 편백나무 무리들이 뿜어내는 싸한 향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고, 이름 모를 새들이 나뭇가지마다 흩어져 지저귄다. 계곡물은 낮게 흐르며 바위에 부딪혀 노래하고, 바람은 등을 토닥이며 지나간다. 녀석도 내 품에서 고요히 숨을 고른다.
나는 자연의 숨결 속으로 스며들듯 걸었다. 그러자, 젊은 날 밀어올리던 바위들이 조용히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연구실의 밤, 식탁의 분주함, 회의실의 긴장, 그리고 집 안을 가득 채웠던 웃음과 눈물. 그 무수한 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나를 지탱하고 있다.
카뮈는 말했다. 시지프가 바위를 밀며 웃고 있다면, 그는 이미 신보다 자유롭다고. 니체는 말한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영원히 반복될지라도, 그 삶을 ‘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제 나는 그 말들이 가리키는 길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삶이란 본래 무게를 지닌 것. 그리고 그 무게를 끌어안는 사람만이, 자신의 인생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웅산을 오른다. 반려견을 품에 안고, 셔츠에 땀이 배어드는 걸 느끼며. 고단하지만, 이 또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숨결이다. 삶은 여전히 나를 부른다.
그래도, 나는 바위를 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