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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왜 내게 오는가

고통에 짓눌리지 않고, 그 고통마저 껴안는 존재의 힘

by 이천우

고통은 왜 내게 오는가

고통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삶이 던지는 질문 같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설명도 없이 스며드는 무게다. 우리는 그 고통 앞에서 흔들리고 묻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질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한다. 그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보며, 단지 ‘견디는 것’을 넘어서 ‘사랑하라(Amor Fati)’고 말한다. 아모르 파티, 즉 운명을 사랑하라는 이 철학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삶의 밝고 어두운 모든 순간, 고통과 실패까지도 내 삶의 일부로 긍정하고 껴안는 적극적인 실존의 태도다. 이 생각은 스토아 철학에서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에 반응하는 자기 자신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니체는 여기에 예술가의 시선을 더한다. 삶이란 혼돈이고 고통이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예술작품처럼 감당하고 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삶은 무의미할 수 있으나, 우리는 그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다. 20세기의 실존주의자들,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 역시 이 태도를 계승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했고,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끝없는 반복이라는 형벌 속에서도 “시지프는 바위를 밀면서도 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바위를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아모르 파티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뤄진다.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외상 후 성장(PTG)은 고통이 끝이 아니라 변화와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너졌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너짐 속에서도 더 단단한 나로 회복해가는 힘, 그것이 아모르 파티의 실천이다.

삶은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또한 나의 삶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고통조차도 삶의 일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아모르 파티란 결국, 고통에 짓눌리지 않고, 그 고통마저 껴안는 존재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오늘의 나를 내 삶의 작가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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