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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가, 그 바람의 노래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by 이천우

사랑가, 그 바람의 노래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로 시작되는 판소리 춘향가 속 ‘사랑가’는 이도령과 성춘향이 마음을 나누던 찰나의 떨림을 담아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달콤한 연정에 머물지 않는다. 신분의 벽을 넘은 순애보이자, 인간이 지닌 사랑의 본질이 노래로 피어난 순간이다. 양반과 기생, 성은 다르고 길도 달랐던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란 말은 고요한 폭풍처럼 다가왔다. 조선이라는 굳건한 질서 안에서, 춘향과 이도령은 벼랑 끝에 핀 꽃처럼 조심스럽게 서로를 향했다.

그날, 바람이 잔잔히 불고, 창 너머로 달빛이 들던 저녁. 춘향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노래—“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는 단지 사랑을 말하는 가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운명을 거슬러 피어난 한 여인의 목소리였고, 조용한 저항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물처럼 맑았고, 돌처럼 단단했다.

춘향은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이도령은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기다림은 언제나 더 깊은 사랑이었다. ‘사랑가’ 속 사랑은 피워내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일이었다. 감옥 속에서도, 매서운 고문 앞에서도, 춘향은 사랑을 꺾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한 남자만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지우지 않겠다는 한 인간의 결기였다.

그 오래된 노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을 건넨다. 사랑은 지금, 더 빠르고 더 가볍게 소비된다.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스쳐가고, 마음을 나누기도 전에 조건이 앞선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랑가’는 더욱 깊은 물소리처럼 우리 곁에 울린다.

춘향의 사랑은 오래 참고, 더디게 피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느린 숨결이다. 그녀의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밤하늘의 별이 다정하게 내어주는 빛 같은 것이었고, 한겨울에도 지지 않는 소나무의 뿌리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묻는다. 사랑이란 결국 무엇이었을까. 춘향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노래만이 남는다—한 시대를 건너와, 오늘도 가슴에 맺히는, 바람 속의 노래, ‘사랑가’.

그 노래는 말하진 않지만, 오래도록 남는다. 쉽게 사랑을 말하는 시대일수록, 쉽게 사랑을 잃어버리기에—어쩌면 우리는 다시, 춘향처럼 사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꽃보다 뿌리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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