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시간 위에 쌓인 우리의 계절

1957년 엘레지의 바다에서 2025년 우리의 추억까지

by 이천우

글 | 2025년 5월 3일, 해운대에서

1957년, 박재홍의 목소리에 실려 퍼져나간 〈해운대 엘레지〉. 그 애절한 선율은 전쟁의 상처와 이별의 아픔을 품은 이들의 가슴속에 파도처럼 스며들었다. 그 시절 해운대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었다. 삶의 무게를 안고 모여든 피난민과 실향민들의 바다. 슬픔과 새로운 시작이 교차하는, 눈물과 희망이 출렁이던 곳이었다. 파도는 아픔을 지우고, 또다시 희망의 흔적을 남겼다.


우리 부부는 종종 해운대를 찾았지만, 늘 짧은 일정에 쫓겨 그 품을 깊이 느껴볼 새도 없이 스쳐 지나기 일쑤였다. 그러다 작년 여름, 은퇴 후 처음으로 진정한 여유를 맛보았다. 2박 3일 동안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바닷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른 아침이면 파도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였고, 낮에는 모래사장을 따라 어싱을 하며 서로의 발자국을 남겼다.



밤이 되면, 해운대의 불빛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지나온 세월을 함께 돌아보기도 했다. 그 바다는 젊은 날 이루지 못했던 여유와 추억을 다시금 우리 손에 쥐여주었다. 그 여름, 해운대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했다.


그리고 오늘, 2025년 5월 3일. 해운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하루 동안 머문 호텔 창밖으로, 조선비치호텔에서 엘시티까지 이어진 초고층 건물들이 밤바다의 불빛과 어우러져 현대적인 스카이라인을 그려냈다. 백사장에는 거대한 모래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바다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고, 간이 무대에서는 젊은 싱어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불렀다. 발리볼 코트에선 청춘의 열정이 파도보다 높이 뛰어올랐고, 곳곳에는 어싱을 즐기는 사람들이 초여름 바다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국적도, 피부색도 다양한 이들이 어울려 해변 가득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작년 여름에 이어, 오늘도 우리는 이 아름다운 해운대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쌓았다.



"파도는 오늘도 쉼 없이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고 또 남긴다. 슬픔과 기쁨, 청춘과 노년,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들이 그 경계선에 켜켜이 쌓여간다. “


사랑과 이별의 바다에서, 추억과 치유의 공간을 넘어 이제는 젊음과 예술, 그리고 세계의 열정이 넘실대는 국제적 휴양지로. 해운대의 모습은 이렇게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바다는 모든 것을 품는다는 것.


오늘, 젊은 날의 미완의 기억과 현재의 충만한 순간이 교차하는 해운대에서, 우리 부부는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마음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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