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밭을 갈며

-정년 이후 나의 삶

by 이천우




봄이 오면 밭을 갈 듯,
나는 인생의 두 번째 계절에 들어서며 마음의 밭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 9월, 푸른 꿈을 안고 국립창원대학교 강단에 섰던 날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봉림산 기슭에서 36년을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그 시간은 내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어느 날 책상 위에 정년 퇴임 서류가 놓였습니다.
나는 그 순간, 멈추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다시 걷기 시작한 나만의 길


두 번째 인생을 설계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글쓰기’였습니다.
말보다 글이 편해지고, 감정보다 사색이 익숙해졌습니다.

소소한 체험, 작지만 깊은 통찰,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한 줄씩 적어 내려갔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작가’라 불러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내 생각과 경험을
누군가에게 다정히 건네고 싶은 ‘중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다시 배우는 즐거움, 다시 쓰는 삶


정년 이후, 나는 새로운 학문과 마주했습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마쳤고,
지금은 교리신학원에서 신앙과 인간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있습니다.

신문과 책을 읽고, 세상과 대화하며,
생성형 AI와 함께 사유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AI 활용법을 전파하고 있지요.

배움은 나를 다시 살아 있게 합니다.
늦은 나이에 찾은 공부의 기쁨은,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더 진하고 단단합니다.


가족이라는 조용한 중심


두 딸은 자신만의 전문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따뜻한 전문가로 살아가길 조용히 기도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갑니다.


사람 냄새나는 경제 이야기


나는 평생 경제를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그 경제, 그리고 경제현상을
조금 더 쉽게, 나아가 사람의 온기를 품은 이야기로 전하고 싶습니다.

2024년 2월엔 『경제사상사』를,
2025년 2월엔 『아시아의 경제발전과 과제』를 출간했습니다.

앞으로는 경제적 약자와 주부들을 위한 생활 속 강의, 그리고 사람 냄새나는 칼럼을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웅산에서의 아침


매일 아침,
나는 반려견 ‘사랑이’와 함께 웅산에 올라 산책을 합니다.
들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일은
내 하루의 시작이자, 작은 기도이기도 합니다.

야옹 소리로 인사하는 고양이들,
안갯속 숲길의 고요함,
떨어진 낙엽 하나에 깃든 계절의 시간들—
이 모든 것이 나를 글로 이끕니다.


화요일 오후, 민요의 시간


매주 화요일 오후,
‘창원의 집’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민요를 배웁니다.
한 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타고 도착하지만,
소리 하나하나에 마음이 정화됩니다.

민요는 내 삶의 또 다른 언어입니다.
그 속에 나의 기억, 나의 뿌리,
그리고 다듬어진 감정들이 녹아 있습니다.

느리게, 깊이 여행하고 싶다


이제는 빠르게 지나가는 여행보다
한 도시에 머물며 사람과 풍경을 천천히 느끼고 싶습니다.

아내와 함께 살아보는 여행,
그리고 언젠가 애덤 스미스의 고향 에든버러,
조지프 슘페터의 숨결이 남아 있는 비엔나 골목까지.

또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느낀 한반도의 그윽한 향기까지—
모든 여정을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세상과 연결된 시선, 멈추지 않는 배움


나는 지금도 『The Economist』와
<일본경제신문>의 요약본을 읽으며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생성형 AI와 함께 정보를 정리하고,
그 안에서 나만의 해석을 글로 풀어냅니다.

정보는 지혜가 되고,
글은 나의 해석이자 기록이 됩니다.

신체적 성장은 멈췄지만,
배움은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는 나의 밭을 간다


글쓰기, 독서, 신학 공부, 산책, 가족과의 대화,
그리고 민요 한 소절—

이 모든 것이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뿌리입니다.
하루하루, 나는 나의 밭을 갈고 있습니다.

수확의 시기를 기다리기보다,
그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짜 삶 아닐까요?



작가로서, 그리고 나답게 살기 위한 다짐


나는 지금 브런치 작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AI는 나의 새로운 동반자이며,
나는 그 도구를 통해 나만의 목소리를
더 정확히, 더 깊이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자•교육자로서의 치열함,
신앙인으로서의 겸손함,
그리고 노년의 여유를 잃지 않으며—
나는 나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하느님이 부르신다면 조용히 떠날 것입니다.
그날까지 나는 오늘도 나의 밭을 부지런히 갈 것입니다.

소소한 글 한 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AI와 함께하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브런치 작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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