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깊은 실천, 지정환 신부 이야기

― 한 조각 치즈로 피운 복음

by 이천우




저는 천주교 마산교구 대방성당 성지순례단과 함께 전주교구의 성지를 순례하고 귀가하던 중, ‘임실치즈테마파크’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외국인 사제가 남긴 조용한 기적의 흔적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지정환 신부. 본명은 디디에 세르스테반스(Didier Serstevens), 벨기에 출신의 선교사로, 한국에서 평생을 바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1959년, 파리 외방전교회(Missions Étrangères de Paris)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1961년 한국으로 파견되었고, 1964년부터 전북 임실 본당 주임신부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굶주림 앞에 멈춘 복음

그가 처음 발을 디딘 1960년대 임실은 고요했지만, 깊은 가난 속에 있었습니다. 성당을 찾는 사람들의 얼굴엔 신앙보다 먹을 것의 고민이 더 절실했지요. 신부님은 그들을 오래 바라보다가,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굶주림 앞에 복음은 잠시 멈춥니다. 먼저 먹여야, 말씀이 마음에 스며듭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보다 먼저, 산양을 나누었습니다. 그 젖으로는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선 치즈는 낯설고 생소한 음식이었습니다.

치즈 한 조각의 기적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1969년 지정환 신부는 벨기에와 이탈리아 등지로 돌아가 직접 치즈 제조 기술을 익히고 관련 기록을 들여와 임실에서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직접 산 밑을 파서 치즈 숙성용 토굴을 만들었고, 1970년, 마침내 한국 최초의 체다 치즈 생산에 성공합니다. 그 치즈는 단순한 유제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마을의 생계를 살린 조각, 그리고 가난을 벗어나는 희망의 첫걸음이었습니다.


나누는 선교, 협동조합

신부님은 치즈 사업을 개인의 소유로 삼지 않았습니다. 1966년, 산양협동조합을 조직하고, 1972년에는 치즈 공장을 마을 주민들에게 완전히 이양합니다.

“이건 제 것이 아니라, 마을의 것입니다.”

그는 뒤로 물러섰고, 주민들은 스스로 일어섰습니다. 이것이 지정환 신부가 실천한 ‘살 수 있는 복음’, 그 나눔의 방식이었습니다.(출처: 임실치즈테마파크 공식 자료)


병마 속에서 다시 선택한 사랑

1983년, 지정환 신부는 다발성신경경화증이라는 병으로 잠시 고국 벨기에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친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이번엔 세운 것은 전북 완주군 상관면의 ‘무지개의 집’.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는 휠체어에 앉은 몸으로도 여전히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웃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출처: 무지개의 집 안내자료)

“이곳이 나의 집입니다.”

2016년,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며 조용히 고백합니다. “이곳이 나의 집입니다.” 그리고 2019년 5월 5일, 그는 임실 성당에서 선종하였고, 자신이 직접 치즈를 숙성하던 토굴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묻혔습니다.

한 조각 치즈로 전한 복음

그의 삶은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치즈 냄새, 흙냄새, 땀냄새는 오늘도 임실의 바람결 속에 남아 있습니다.

“가난한 이 곁에 머무는 것이, 하느님 곁에 머무는 일입니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나눈 치즈 한 조각일 수 있음을 그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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