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재는 삼분초등학교 아이들이 소풍을 가던 곳이었다. 그 고개는 단순한 지형이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 웃음과 추억이 포개진 언덕이었다.
소풍날 아침, 아이들은 도시락을 든 손으로 학교에 모여들었다. 엄마가 정성스레 싸준 밥상. 쌀밥과 삶은 달걀, 김치 몇 조각, 가끔은 멸치볶음이 반찬으로 들어 있었다. 그 정도면 그날은 왠지 더 특별해졌다. 도시락은 대개 낡은 책 보자기에 싸여 있었다. 비릿재에 도착하면 우리는 그 보자기를 풀어 바위 위에 펼쳤다. 돗자리도, 신문지도 없던 시절. 책 보자기 한 장이 우리의 식탁이자 쉼터였다. 햇살에 데워진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우리는 봄바람을 맞고, 풀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아래에서 세상의 중심에 선 듯 가슴이 뛰었다.
고개에서 우리는 술래잡기를 했다. 소나무 뒤,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잡고, 도망치고, 웃으며,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뛰어다녔다. 보물 찾기도 이어졌다. 선생님이 숨겨둔 쪽지를 찾아 풀숲을 헤집고 돌 틈을 뒤지며 우리는 마치 세상을 탐험하는 아이처럼 들떴다. 보물은 작았지만 기쁨은 컸다. 웃음과 아쉬움이 고개 너머까지 퍼졌다.
하지만 비릿재는 단지 놀이터만은 아니었다. 고개 아래 능선에는 조부모님과 큰아버지의 산소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를 따라 그곳을 자주 올랐다. 아버지는 묵묵히 잡초를 뽑고, 나는 돌을 주우며 흙을 만졌다. 바람은 고개를 넘어 불어왔고, 풀잎은 조용히 흔들렸으며, 하늘은 유독 넓고 깊었다. 그곳은 조용한 가족의 자리였고, 나중에는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무대가 되었다. 그래서 비릿재는 내게 더욱 특별하다. 그곳에는 조상의 숨결이 있고, 나의 동심이 있고, 삶의 가장 순수했던 계절이 있다.
2015년, 삼분초 17회 졸업생 30여 명이 졸업 50주년을 맞아 다시 비릿재에 모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 자리에 서자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유래비 옆에 앉아 옛이야기를 꺼내고, 고개 아래 산소를 가리키며 아버지와의 기억을 조용히 떠올렸다.
지금의 비릿재는 깔끔하게 정비된 2차선 도로가 놓인 편리한 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름 속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아 있다. 옛날, 한양으로 향하던 길손들이 산적의 습격을 자주 받았고,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아 '비릿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 혹은 신라 진흥왕이 지나며 큰 차돌을 들어 올렸다는 전설. 그 돌을 들지 않고 고개를 넘으면 화를 입는다는 믿음에, 사람들은 저마다 돌을 들어보며 길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제 비릿재는 전설의 고개가 되었고, 유래비와 쉼터가 생겼다. 그러나 내게 비릿재는 여전히 소풍의 웃음과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지는 곳이다. 그 길을 오를 때마다, 나는 삶의 뿌리와 날개를 동시에 느낀다.
지금도 나는 마음속으로 그 고개를 오른다. 책 보자기 위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아버지를 따라 능선을 걷고, 바위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 모든 기억이 겹겹이 쌓여, 비릿재는 오늘도 내 안에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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