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입김이 피어오르던 1965년 2월 말, 그 겨울 아침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안계장을 찾던 그날, 세상은 분주했지만 내 마음엔 설렘이 가득했다. 따끈한 국밥 냄새, 장바구니를 든 어머니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묵묵히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날, 중학교 입학을 앞둔 나를 위해 아버지가 준비하신 선물은,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한 응원의 마음이었다.
검정 고무신 모양에 갈색 털이 복슬복슬하게 덧대어진 털신 한 켤레. 안감은 담요처럼 포근했고, 단추로 여미는 구조까지 갖춰져 있었다. 4km의 등굣길, 찬바람 속에서 내 발이 시릴까 걱정한 아버지의 세심한 배려였다. 그 털신은 단지 겨울을 견디는 신발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응원의 상징이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그날만큼은 조금 달랐다. 털의 두께를 손등으로 하나하나 확인하고, 단추의 여밈까지 꼼꼼히 살피던 아버지의 손끝엔 조용한 사랑이 배어 있었다. 장터의 소란한 분위기 속에서도 가장 좋은 털신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눈빛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고 있었다.
당시 친구들은 대부분 운동화를 신었지만, 나는 그 털신을 자랑스럽게 신었다. 예쁘고 따뜻했기에, 부끄럽기는커녕 오히려 내 발끝이 자랑스러웠다. 매일 아침 그 털신을 신을 때마다 아버지의 손길이 발끝에 닿는 듯했고, 마음 한구석이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1960~70년대 한국에서 털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었다. 김장, 겨울옷과 함께 '3대 월동 필수품'이었고, 아이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던 선물이기도 했다. 자녀의 발 크기를 끈으로 재어 오시던 아버지들, 추운 겨울 부모님을 찾아뵐 때 손에 들린 털신 한 켤레. 그 안엔 서로를 향한 걱정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달라졌다. 1970년대 후반 이후, 경제의 성장과 도시화로 사람들의 신발은 점점 더 세련되고 실용적인 것들로 바뀌어 갔다. 털신은 점차 일상에서 사라졌고, 이제는 효도화나 수행자의 신발로 그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 털신은 단순한 과거의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응축된 상징이며, 겨울 아침마다 내 마음을 다독이던 따뜻한 손길이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내 발을 감싸던 그 포근함은, 천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였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따뜻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선물은, 바로 그 털신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그 한 켤레의 털신으로 가르쳐주셨다.
사랑은 종종, 가장 조용한 형태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조용한 사랑이야말로, 평생을 감싸주는 진짜 따뜻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