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물과 나의 고향

-내 고향 삼분

by 이천우




“고향이란, 흘러가면서도 머무는 기억입니다.”



삼분리. 생소한 듯 들릴 수 있는 이 이름은 내게 아주 익숙하고, 따뜻한 온도의 단어입니다. 경북 의성군 다인면, 그중에서도 삼분이라는 마을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자, 마음속 주소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고향입니다.

어릴 적, 삼분이란 이름의 뜻을 알지 못해 한참을 헤맸습니다. ‘삼분(三汾)’이라니, ‘셋’이라는 숫자와 ‘나눈다’는 뜻이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하나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단순한 행정 지명이 아니라, 자연이 흘러간 방향과 사람이 살아낸 방식이 만든 이야기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들판을 만나 세 갈래로 나뉘며, 각각 다른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이 마을을 길렀던 것이지요.

그렇게 보니, 이 고향의 이름은 단지 불리는 단어가 아니라, ‘흘러간 물’과 ‘살아온 기억’의 결정체였던 것입니다.



1. 세 갈래 물이 만든 마을, 삼분의 이름


삼분(三汾)은 ‘세 갈래로 나뉜 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암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들판에 이르러 방향을 달리하며 세 개의 저수지를 만들었고, 그 물길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지명은 인위적으로 붙여진 행정 명칭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써 내려간 이름이었습니다. 물은 길을 만들었고, 사람은 그 물길 위에 삶을 얹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닌, 한 편의 생태적 시(詩)입니다.

“이 마을 이름은 산에서 내려온 물이 세 갈래로 흘러 만들어졌단다.”
— 삼분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말씀


2. 저수지가 길러낸 삶과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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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리에는 세 개의 저수지가 있습니다. 동쪽 들판을 적시는 용천지(龍川池), 본 마을 중심을 흐르는 도관지(道館池), 그리고 남쪽 소나무 언덕 아래의 남송지(南松池).

용천지는 늘 맑고 풍부한 물로 생명의 시작점이었고, 도관지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마을의 주 수원 역할을 합니다. 남송지는 그 이름처럼 조용히 마을의 숨결을 지탱하는 고요한 존재였죠.

이 물길 덕분에 마을은 논과 밭을 가꿀 수 있었고, 사람들의 하루가 흘러갔습니다. 물은 공동체의 중심이었고, 저수지는 마을의 심장이었습니다.


3. 삼분초등학교, 마을의 심장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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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한 삼분초등학교는 단지 배움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아이들의 꿈이 자라던 터전이었습니다. 운동회 날이면 마을 전체가 축제였습니다. 줄다리기, 씨름, 박 터뜨리기까지… 운동장 한켠에는 김이 나는 국밥 솥이 놓이고, 사람들 웃음소리가 메아리쳤습니다. 아이들은 ‘삼분’이라는 이름에 자긍심을 갖고 자랐고, 어른들은 그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4. 흘러간 것들,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것들


시간이 흘러 학생 수는 줄고, 학교는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와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봄이 되면 동문들이 운동장을 찾아와 웃고, 걷고, 줄을 당깁니다.

그 기억은 마음속에 고여 있는 물처럼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 마을을 ‘삼분’이라 부르고, 그 이름 안에서 유년의 시간을 되새깁니다. 그렇기에 삼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삼분은 단지 지도 위의 이름이 아닙니다. 자연이 써 내려간 한 편의 시이자, 사람들이 살아낸 역사입니다. 문암산에서 흘러내린 물처럼 기억도 흘러가지만, 그 흐름은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고향’이라는 말을 잊고 살지만, 그 단어 속에는 익숙한 물소리와 따뜻한 이름 하나가 조용히 머물러 있습니다. 삼분. 그 이름을 되뇌는 순간, 마음 한켠에서 물처럼 흐르는 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너의 기억 속에서, 너의 삶 속에서 흐르고 있다.”

그 말 없는 인사 앞에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마음의 귀를 기울입니다. 고향은 그렇게, 지금도 우리 안에서 살아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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