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나는 문득, 식물들이 이 극심한 더위와 기후변화에 어떻게 맞서 살아남는지를 떠올렸다. 웅산 자락을 오르며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던 순간, 150cm가량 되는 1년생 식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년생 풀 한 포기의 잎은 바싹 말라 있었지만, 줄기는 여전히 푸르게 서 있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존재가 어떻게 이런 혹독한 여름을 버텨낼 수 있는 걸까.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생존의 비밀이, 이 작은 식물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물들의 삶은 조용하지만 결코 나태하지 않다. 그들은 상황에 맞춰 잎을 줄이고, 뿌리를 깊게 내리고, 꽃 피는 시기를 앞당긴다. 가뭄이 들면 잎을 스스로 떨궈 수분을 아끼고, 씨앗은 발아의 시기를 조절하며 더 나은 때를 기다린다. 바람이나 동물의 힘을 빌려 멀리 흩어지기도 한다. 사람처럼 고민하거나 번민하지는 않겠지만, 식물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 세계에 적응하고, 변화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변화 앞에서 자꾸만 저항하려 하는 걸까. 왜 자연의 흐름을 외면하고, 익숙했던 방식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걸까. 기후가 달라졌음을 분명히 느끼면서도, 여전히 에어컨과 자동차, 과잉 소비 속에서 예전의 삶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어쩌면 식물처럼, 우리도 자신을 조금씩 바꿔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사실 그 작은 실천은 멀리 있지 않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 전기와 물을 아끼는 것. 지금 내 곁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한 선택들이다. 그렇게 반복된 선택이 쌓이면,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우리를 지켜주는 깊고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지 모른다. 마치 식물이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땅속 깊이 내리는 그 뿌리처럼.
또 하나, 식물이 말없이 전하는 생명의 지혜는 ‘공생’과 ‘다양성’이다. 곰팡이, 곤충, 새들과의 협력 없이는 그들도 살아남기 어렵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고, 기대며,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할 때 우리는 더 회복력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식물이 말하는 지속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움직이지 못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존재.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변화를 견디고 받아들이는 존재. 식물의 생명력은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한 방식일지 모른다. 매일을 살아내는 태도, 작지만 지속적인 변화. 기후 시대의 생존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그런 태도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오늘, 한낮의 열기 속에서 마주한 마른 풀잎 하나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변화를 두려워 말고, 네 방식대로 적응하라. 너도 그렇게 살아낼 수 있다’고. 말없이도, 그들은 늘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