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들고양이들의 쉼터는
진해는 어제 오후부터 비가 쉼 없이 내리고 있다. 가늘던 빗줄기는 어느새 굵어져, 산길 곳곳을 젖게 하고, 나뭇가지 끝마다 물방울이 맺혀 흔들린다. 광석골 쉼터에 들렀을 때, 정자의 마루는 이미 빗물이 스며들어 축축했다. 기둥 옆 가장 구석진 곳,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바싹 말아 웅크리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내밀며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은 낯설지 않다. 몇 해 동안 비슷한 자리에서 마주친, 오래 알고 지낸 이의 시선이었다. 철쭉 숲 아래엔 젖은 낙엽이 켜켜이 쌓여 있고, 바람 속에는 흙과 나무가 함께 젖은 냄새가 은근하게 번진다. 쉼터라 불리지만, 그 고양이에겐 비를 온전히 피할 수 없는 불완전한 피난처이다.
웅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벌써 스무 해가 넘었다. 처음엔 그저 건강을 위해 걷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산에 기대어 살고 있다. 산은 나를 묵묵히 받아주었고, 나는 그 품 안에서 계절의 변화를 배우고, 숲의 숨소리를 들으며 노후를 즐기고 있다. 네 해 전부터는 배낭에 고양이 밥을 넣고 오르기 시작했다. 광석골 쉼터와 목재체험장 입구엔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 사료를 그릇에 부으며 낮은 목소리로 “양이야, 맘마 먹자.”라고 부르면, 철쭉숲 속, 바위틈, 나무 밑둥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하나둘 나타난다. 조심스러운 눈빛이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신뢰가 깃들어 있다.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산으로 오르게 하는 에너지가 되곤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에는 밥을 줄 수 없다. 빗물은 밥그릇 속까지 스며들고, 고양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물기를 머금은 낙엽 위를 걸을 때마다, 발뿐 아니라 내 마음까지 젖는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철쭉 숲 어둑한 그늘, 고목 뿌리 사이, 나무 계단 밑의 좁은 어둠 속… 그곳에서 바람을 피하며, 비를 막을 작은 틈 하나를 찾아 숨어 있을 것이다. 야생에서 살고 있지만, 그 삶은 결코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매 순간 쉼터를 찾아 헤매는 몸짓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자주, 정자 기둥 옆의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를 떠올린다. 작고 늙은 몸을 둥글게 말아, 빗줄기를 피해 있던 모습. 고개를 들어 나를 알아보던 눈빛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눈빛은 말없이 “괜찮다”는 듯,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힘이 되고 있었다.
지금도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철쭉잎 위로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진다. 내 시선은 자꾸만 산속 어딘가로 향한다. 그들이 젖지 않은 구석 하나를 찾아 몸을 기댄 채, 비바람을 견디고 있기를. 바람의 방향을 잘 읽어, 빗물이 덜 스미는 자리로 옮겨 앉아 있기를. 언젠가, 들짐승들에게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고요하고 마른자리가 주어 지기를. 그날이 온다면, 그들은 비 오는 날에도 눈을 반쯤 감고 편히 잠들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더 이상 비에 젖은 눈빛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대신, 젖은 숲속에서도 평온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나 또한 그 고양이들처럼, 자연 속에서 안심하고 몸을 누일 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프랭클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이 이 빗줄기 속에서도 버티는 이유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다시 햇볕이 드는 날,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을 나누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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