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으로서의 한(恨)
‘한’(恨)은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감정이라 불린다. 우리는 오랜 세월 침략과 전쟁, 가난과 억압 속에서 힘든 삶을 견뎌야 했다. 쉽게 풀 수 없는 분노와 원망은 깊이 가라앉아 한이 되었고, 그 속엔 언젠가 누군가 응답해 줄 거라는 은밀한 믿음이 숨어 있다.
‘한’은 언제나 응답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손 놓고 마냥 앉아 있는 게 아니다. 억울함이 속 깊이 잠겨 있을 때도, 그 밑바닥엔 언젠가 누군가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내재해 있다. 그 믿음은 찬바람 끝에 매달린 매화처럼, 매서운 겨울을 견디며 꽃을 틔울 날을 기다린다. 얼어붙은 강가의 버드나무가 봄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한’도 풀릴 때가 있다는 걸 안다.
판소리 속 여주인공을 보자.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로 몸을 던지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귀환했고, 세상이 씌운 억압의 틀을 깨뜨렸다. 춘향은 권력 앞에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옥에 갇혀도, 그녀의 노래와 눈빛은 이미 세상에 대한 당찬 대답으로 응대했다. 무대 위 소리꾼은 고개를 높이 들고 목청을 터뜨린다. 장단이 느려지고 북채가 ‘쿵… 쿵…’ 울리면, 그 소리는 울음을 길게 끌다 한 번에 터뜨리는 것 같다.
“이 목숨 다하더라도, 굽히지 않으리라…” 관객석 어귀에 앉은 관중들은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노래는 극 중 대사를 넘어, 무대 밖 사람들의 삶을 대신 말해준다. 닫힌 방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이자,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렇게 예술이 ‘한’을 노래로 풀어낼 때, 다른 쪽에서는 의례가 ‘한’을 장단으로 풀어낸다. 마당 한가운데 굿판이 벌어진다. 무당이 붉은 치마를 펄럭이며 원을 그리듯 빙빙 돈다. 머리 위로 들린 방울이 ‘짤랑, 짤랑’ 울릴 때마다, 묵은 사연이 한 겹씩 벗겨지는 것 같다. 북은 ‘두둥, 두둥’ 숨을 고르고, 피리 소리는 길게 뻗어 하늘로 울려 퍼진다.
“듣고 계신가, 이 사연을 받아 가소서!” 사람들은 절편과 막걸리를 제상 위에 올리며 각자의 속마음을 신에게 건넨다. 울음과 웃음이 뒤섞이고, 그 순간 ‘한’은 한 사람의 짐이 아니라 모두의 짐이 된다. 굿판의 장단이 그것을 마을 전체의 대답으로 바꿔놓는다.
판소리와 굿판이 지금까지 살아온 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오래 살아내기 위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상처 속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았다. 전쟁 폐허 속에서도 사람들은 다음 날 장화를 신고 들판에 나갔다.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기계 소리에 묻혀도 여전히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 부르기가 곧 응답이었다.
한민족의 전통문화 속 ‘한’은 여러 개 얼굴로 나타났다. 민요 속 구슬픈 가락은 산허리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처럼 마음을 스쳤다. 가야금 줄 사이로 번지는 떨림은, 잊었던 눈물이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순간 같았다. 판소리 무대의 장단, 굿판의 북소리, 매화의 인고—이 모두가 고통을 풀고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숨길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또 하나의 무대가 그 응답의 흐름을 잇고 있다. 바로 트로트다. 흥겨운 리듬과 반복되는 멜로디 속에 서려 있는 건, 사실 웃음 뒤의 울음, 흥 속의 한이다. 떠난 이를 부르는 애절한 구절,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잘 살아보세”라고 다짐하는 목소리,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는 후렴은 현대판 굿판이자 노래판이 아닌가. 무대 위 가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객석을 건너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갈 때, 한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의 사연이 된다. 그 순간, 트로트는 ‘오늘의 한’을 함께 풀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장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응답을 짓고 있을까. 어제의 한이 홀로 살아남기 위한 절규였다면, 오늘의 한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숨결이어야 한다. 지역 축제에서 골목을 은빛으로 물들이는 연등, 화재와 수재로 무너진 집터 위에 다시 세워지는 이웃의 벽, 먼 곳에 있는 친구에게 건네는 짧은 안부 한마디—이 모든 순간이 오늘의 응답이 아닐까. 그것은 무너진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이 아니라,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으켜 세우는 따뜻한 손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한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겨울엔 얼어붙은 듯 보여도, 얼음 밑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물이 흐른다. 매화는 찬바람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장단은 멈추지 않는다.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도 남는 건, 응답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이다. 강물처럼 흘러가며 새로운 땅을 적시고, 그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매화의 인고, 강물의 흐름, 장단의 울림,그리고 오늘의 트로트가 이어주는 목소리—이 모두가 우리의 응답이다.
한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하지만 그 끝나지 않음이 이제는 고통의 사슬이 아니라, 서로를 부르는 장단이 되기를 소망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백 년 이 땅을 지켜오며 살아낸 지혜였고, 앞으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단은, 강물처럼 흘러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기에.
#한의미학
#응답으로서의한
#한국전통정서
#판소리와굿판
#매화와장단
#문화로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