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나에게 말을 걸 때

웅산의 하모니

by 이천우


숲이 나에게 말을 걸 때


숲속을 걷는 자의 마음은 녹색이다



도시는 여름이면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진다. 에어컨 실외기의 진동, 신호등 앞 차량의 경적, 공사장의 굉음이 하루의 리듬을 무너뜨린다. 그 속에서 나는 종종 어떤 본래의 소리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러나 웅산(熊山)에 오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진해 도심에서 불과 삼십 분 남짓 떨어진 거리지만, 그곳의 여름은 마치 시간을 되감은 듯한 고요를 품고 있다. 도로를 벗어나 좁은 산길을 걷기 시작하면, 공기부터 다르다. 숨이 차오를 즈음, 짙푸른 녹음이 땀으로 젖은 이마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 순간, 웅산의 여름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웅산의 여름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되레 수많은 소리로 살아 숨쉰다. 매미는 쉼 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바람은 나뭇잎을 휘돌며 낮은 현악기처럼 울린다. 작은 개울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타고, 이름 모를 새들은 각자의 멜로디를 더한다. 이 모두는 따로 존재하지만, 함께 어울릴 때 비로소 하나의 음악처럼 들린다. 단순한 소음을 넘어선, 치밀하게 짜인 합(合)으로. 그 하모니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정교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을 넘어, 몸으로 느껴진다. 마치 숲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되어 나를 감싸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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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이 숲의 '소리'가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인간이 잊고 지낸 오래된 언어.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연결되고, 경계를 만들고 또 허무는 방식으로. 그것은 질서였고, 동시에 유연함이었다. 생태계란 단지 ‘서로 다른 종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되고 상호작용하는 살아 있는 구조체다. 웅산 숲의 여름은 그 진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겉으로는 정적이지만, 실제로는 쉼 없이 움직이는 유기체. 그 안에서 나조차도 하나의 리듬으로 흡수되는 느낌이 든다. 마음 깊은 곳까지 녹아드는 숲의 숨결에 내 감각이 하나씩 깨어난다.



그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이 조화가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서 있는지 곧 깨닫게 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골짜기에서는 오히려 더 맑고 명확한 소리가 들린다. 그곳엔 경계가 없고, 통제가 없고, 침묵이 없다. 인간의 존재는 언제나 어떤 자국을 남긴다. 웅산 곳곳을 복구한답시고 하천을 포크레인으로 파헤쳐 돌과 시멘트로 채우고 있어 안타깝다. 길이 넓어지고, 쓰레기가 생기고,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소리들이 줄어든다. 인간은 자연에 들어갈 때 흔히 그것을 '향유'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가 먼저 그 생명의 흐름을 거스르며 조화를 깨뜨리기 일수다. 웅산의 여름이 살아 있다는 말은 곧, 인간이 침묵해야 자연이 말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도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자연을 위안으로, 휴식의 공간으로 여긴다. 그러나 웅산은 우리에게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자연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 우리가 이 하모니 속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 그저 감탄하고,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자연이 가진 고유의 리듬에 맞춰 우리를 조율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자연은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 대신 살아 있는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소리를 듣는 일이다.



웅산의 여름은 인간이 얼마나 둔감해졌는지를 들춰낸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인공적인 질서와 계획된 구조다. 반면, 자연은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통제가 아니라 조율이고, 지배가 아니라 공존이다. 여름의 숲은 결국,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삶의 방식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라는 자연의 법칙처럼, 우리는 이 숲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그러니 웅산의 숲길을 걸을 때, 단지 바라보는 데 그치지 말고, 귀 기울여야 한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바람이 지나가는 숨결,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히는 그 미세한 울림까지.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가 듣지 않고 지나쳤을 뿐이다. 인간이 자연을 향해 다시 조율될 수 있다면, 그 첫걸음은 아마도 이 작고 낡은,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져 온 소리들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 소리야말로 우리가 잊은 삶의 리듬이자, 되찾아야 할 침묵의 언어다.



푸른 초원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우리집 사랑이를 상상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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