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언제부턴가 그냥 밥만 짓는 자리가 아니라, 기억과 마음이 켜켜이 쌓이는 무대가 되었다. 내겐 그 시작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불을 피우고 솥을 올리시던 그 순간이었다. 그때는 참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밥상 위에 올라오는 음식들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섰다. 그것엔 정성이 담겨 있었고, 연민이 있었고, 부모의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1950년대 후반 농촌의 식탁은 자연이 내어준 것들로 채워졌다. 비름나물은 씻다 보면 풀 향이 은은하게 배었고, 돈나물이나 질경이는 호미로 캘 때마다 흙냄새와 함께 향긋한 기운이 감돌았다. 된장에 살짝 참기름을 더한 나물 반찬은 밥 없이도 손이 갔다. 아버지와 함께 하천에서 잡아 온 붕어나 피라미에 얼갈이배추를 넣어 끓인 매운탕은, 그야말로 다음 날을 버틸 힘이 되어주었다. 보리밥 위에 갓 캔 정구지나물 한 줌, 수제비 몇 조각만 얹어도 그때 그 부엌은 늘 풍성했던 것 같다. 허기졌지만, 기억만큼은 늘 배불렀다.
요즘 나는 아파트 부엌에서 오뎅, 두부, 양파, 멸치 가루를 넣어 간단한 오뎅국을 자주 끓인다. 포장된 안동소고기국이나 곰탕, 소불고기 전골, 언양불고기, 다양한 만두와 함박스테이크, 닭가슴살, 우렁이 강된장까지—우리 집 냉장고는 작은 마트처럼 꽉 차 있다. 이 재료들을 적당히 섞어 끓이면 시레기국 맛도 나고 부대찌개 느낌도 나는 엉성하지만 나다운 요리가 완성된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늘 쓰시던 된장, 시레기, 멸치—그 조합을 내 입이, 내 손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오랜만에 막내딸이 집에 왔다. 사회생활 하느라 바쁜 아이인데, “점심은 밖에서 먹을까? 아빠가 메밀면 삶을까?” 했더니, “더운데 어딜 나가요, 아빠 메밀면 좋죠!” 한다. 일전에 진해 중앙시장에서 사온 얼갈이김치와 물김치가 있었기에 함께 꺼냈다. 셋이서 둘러앉아 후루룩 먹으며, 문득 “이 메밀면도 고향 어느 들판에서 자랐겠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일상 속 장면들이 참 정겹고 소중하다. 집밥이라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작고 귀여운 연극 같다.
요즘은 우리처럼 나이 든 부부들은 외식을 자주 한다. “무릎이 시큰하니 오늘은 추어탕 먹으러 가자”는 핑계로, 아니면 “밖에서 한 상 받는 게 더 편하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외식을 하고 돌아온 날에도 부엌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설거지 안 해도 되니까 너무 좋다”며 웃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된장찌개를 끓이게 된다. 그 짭조름한 국물 한 숟갈에 담긴 온기, 그게 집밥의 힘이고, 부엌이 주는 안정감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부엌은 외식을 마치고 돌아와 앉는 자리이자, 둘이서 함께 살아온 시간을 되짚는 무대가 된다. 누군가를 위해 손을 놀리고, 떠난 이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런 공간 말이다. 요리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기억을 곰삭게 떠올리고, 마음을 보듬게 하는 일이다. 부엌은 작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세대를 넘어 흐른다. 결국, 요리란 나와 누군가를 이어주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쌓아온 인생의 향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자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