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속담이지만, 인간 발달의 본질을 꿰뚫는다. 아이는 씨앗으로 태어나고, 그 씨앗이 어떤 나무로 자랄지는 결국 어떤 토양 위에 놓였는지에 달려 있다.
요즘, 일부 계층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의대 진학을 위한 선행 학습’ 열풍을 보며 나는 이 속담을 다시 떠올린다. 아직 자아도 충분히 자라지 않은 나이에,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좌우할 진로가 결정되는 풍경 앞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의료인의 자질은 시험으로만 길러질 수 없다
이 질문은 작년 6월 이후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의료계의 갈등 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안에 맞서 전공의와 의사단체, 의대생 단체들이 대규모로 반발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책 갈등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어떻게 형성되고 평가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우리는 이 사태를 보며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 그리고 공동체적 감수성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의사는 단지 높은 점수를 받아 의대에 입학한 사람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타인의 고통과 삶에 민감해야 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타인의 고통을 공감해야 하는 정말 어려운 직업인 것이다.
더욱이 향후 100세 시대를 살아갈 의료인은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자질이, 과연 조기 선행과 입시 경쟁이라는 구조 속에서 길러질 수 있는가?
뿌리는 어린 시절에 내린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한 인간의 형성과정, 그 출발점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발달심리학과 뇌과학은 생애 첫 시기, 특히 유아기와 아동기가 인간의 성격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결정적 시기라고 말한다.
에릭슨은 신뢰와 자율성이 이 시기에 형성된다고 했고,볼비는 애착의 질이 향후 관계 능력과 공감력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했다.뇌과학은 초기 경험이 신경망의 구조 자체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즉, ‘세 살’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아이가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민감하게 인식할 수 있는지, 협력과 배려를 어떻게 체화하는지는 놀랍게도 인생의 매우 이른 시기에 결정된다.
따라서 의료인을 포함한 모든 전문직 교육의 뿌리는, 학문적 훈련보다 더 앞선, 유아기와 아동기의 정서적·사회적 환경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키우고 있는가?
이러한 통찰은 우리 일상 속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초등학교와 마주하고 있다. 아침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걸음이 창밖을 지나간다. 나는 이 아이들의 발랄한 모습을 보면서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이들의 모습은 한편으론 흐뭇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아이들 중 일부는 이미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 아래, 놀 시간도, 친구와 다툴 시간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게 과연 바람직한 모습인가?
우리는 아이가 어떤 직업을 갖느냐보다, 어떤 사람으로 자라느냐를 먼저 물어야 한다. 협력과 공감, 책임과 돌봄이라는 자질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놀고, 실패하고, 관계 맺고, 용서받는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어린 시절에야 비로소 온전하게 쌓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교육 환경은 곧 미래 사회의 윤리적 기반이 된다.
사회 전체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
결국 한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 것인가의 문제는 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 의료 교육이든 인문 교육이든, 모든 교육의 본질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가정은 사랑과 신뢰의 기반을 제공해야 하며,
학교는 협력과 감정 조절을 배우는 공간이어야 하며,
사회는 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돌봄과 책임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이 세 가지 환경이 함께 작동할 때,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갈 의료인을 포함한 건전한 시민들을 길러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웃고 놀며 신뢰를 배우는 ‘세 살의 환경’이 바탕이다.
미래는 지금의 교육에 뿌리를 둔다
결론적으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단지 아이의 습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환경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는가를 묻는, 매우 본질적이고 사회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의료 교육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입시 제도나 정원 수에 머물러선 안 된다.
아이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것—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고, 진정한 의료인의 시작이다.
아이 한 명의 버릇을 탓하기 전에, 그 아이를 길러낸 환경을 성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책임 있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