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처럼 피었다 지는 삶

생태계가 전하는 사유의 언어

by 이천우

수련처럼 피었다 지는 삶



생태계는 서로 관계망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늦여름 아침, 웅산 기슭의 소류지에 서면 눈앞에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흰빛과 연분홍, 노랑으로 수면을 수놓은 수련(睡蓮)이 잔잔한 물 위를 덮고, 그 사이로 잉어들이 유영하며 물결을 만든다. 오리들은 수련잎 사이를 헤쳐 천천히 지나가며 풍경의 고요를 완성한다. 언뜻 보면 단순히 아름다운 장면 같지만, 그 속에는 계절의 호흡과 생명의 연쇄, 그리고 내 삶의 시간이 비춰진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오며 나에게 흘러가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생태학은 이러한 얽힘의 의미를 보여준다. 세계를 고립된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와 상호 의존으로 이루어진 그물망으로 보는 시각이다. 어떤 생명도 혼자 존재하지 않으며, 늘 다른 존재와의 연결 속에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수련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곤충과 물고기, 미생물과 새, 그리고 빛과 물의 온도까지를 아우르는 복합적 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 잎 아래의 작은 물고기와 곤충은 그늘 속에서 숨고, 잎 위의 물방울은 미생물의 거처가 된다. 잉어와 오리 또한 그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소류지의 풍경은 곧 살아 있는 네트워크이자 생명의 합창이다.


이 관계망 속에서 계절은 묵묵한 리듬을 만든다. 한여름, 수련은 넓은 잎으로 햇볕을 가리며 수온을 조절해 어류의 생존을 돕는다. 가을이 닥치면 잎은 서서히 시들고 썩으며 다시 흙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을 살리는 영양분이 된다. 생태학적으로는 하나의 순환이지만, 내게는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 감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단순히 지나감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스러지는 과정을 직접 목도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래도록 철학의 주요 주제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면서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하이데거는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흐름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보았다. 이런 사유들이 웅산 소류지에서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감각적 체험으로 다가온다. 가을로 접어들면 시드는 수련잎과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물방울처럼, 나의 하루 역시 그렇게 소멸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것은 삶이 덧없으면서도 동시에 소중하다는 것을 고요히 가르쳐주는 풍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 이 얽힘을 외면하며 살아왔을까. 수련을 단순한 배경으로만 소비하고, 그 안의 생명들을 잊은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자연을 자원과 도구로만 바라보고, 효율의 척도로만 평가해 온 태도 속에서 관계의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중심의 시각 속에서 생명의 연결성은 생산성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버렸다.


따라서 생태학적 시각이 요청하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보호하자는 도덕적 명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는가? 나 혼자 설 수 있는가? 수련 아래 작은 생명들처럼, 우리 역시 누군가의 그늘 속에서, 누군가의 존재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얽혀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세계를 조금 더 세심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순간을 붙잡으려 애쓴다. 그러나 분주한 일상 속에서 정작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놓치기도 한다. 소류지의 풍경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흐름을 살아가고 있는가?” 수련이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듯, 나 역시 내 삶의 계절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은 단순한 자기성찰을 넘어, 존재의 뿌리를 다시 묻게 한다.


자연은 두 가지 교훈을 남긴다. 첫째, 인간 역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우리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다. 둘째,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속에 의미를 채우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따라, 그것은 허무가 될 수도 있고 울림이 될 수도 있다. 삶이 허망하게 느껴질 때, 나는 소류지의 고요한 수면을 떠올린다. 그 속에 깃든 생명의 질서와 시간의 리듬을.


수련이 계절의 흐름을 따라 피고 지듯, 나 또한 시간의 물결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살고 싶다. 웅산 소류지 앞에 서면, 지나온 날들과 다가올 날들이 겹쳐 떠오른다. 노년을 살아가며 순간의 덧없음이 두렵게 다가올 때도 있지만, 그 덧없음이야말로 삶의 깊이를 빚어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의미로 채우며, 고요히 피었다 지는 수련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작은 흔적 하나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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