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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켓 Apr 29. 2024

우울증입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오랜만에 접속하게 된 브런치.

아직도 내 글이 남아있고, 작년까지만 해도 구독을 눌러주시는 분과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이 있었다는 사실에 괜스레 놀라웠다.


브런치라는 서비스가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 바로 작가에 등록되었다.

당시에는 영화에 미쳐있었다고 할 만큼 하루에 영화관에서 3~4편을 연달아 보았고 후기를 적는 게 너무 즐거웠다.


딱히 우울증 때문에 글 쓰는 것을 중단한 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 영화를 보는 날도 줄어들고 글도 쓰지 않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전에 적었글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지금의 나는 우울증이 심했던 시기를 포함하여 그 이전의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문장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 책 한 페이지 아니 한 줄을 읽는 것조차 몇 번의 반복을 거쳐야 하며,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는 자주 쓰는 단어도 생각이 나질 않아 가끔은 말을 내뱉는 것이 두렵고,

그나마 나에게 쥐어진 작은 재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기초 단계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태가 된 후에 예전에 썼던 글 혹은 그렸던 그림들을 보니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결과물들도 '내가 이 정도나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란 참 무섭다.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을 내게서 하나씩 지워버린다.

영화 보기, 그림 그리기,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 떨기, 과거의 추억, 나의 꿈과 미래 심지어 가족들과의 관계마저. 

마음의 감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하게도 인간의 외적인 부분에서부터 내적인 부분까지 남김없이 무너뜨린다. 그냥 무너뜨리기만 하면 다행이지 나에게 할당된 우울증은 내게 각인된 세포 하나하나를 지워나가는 듯하다. 마치 내가 사라지고 나의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만들 작정으로.


최근 몇 년간 그나마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남자친구 덕분이었다.

...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10년 이상 함께 지내온 우울한 감정이 다시 증폭되었다. 죽을 용기가 없어 살아가는 내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좋지 않은 결심을 할 것 같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나 혼자였다면 괜찮을 텐데 혹시 결혼 후에 무슨 일을 저지르면 홀로 남게 될 남자친구가 걱정되었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 한번 슬퍼졌다.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런 때조차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는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아 약물로 일시적인 치료가 필요한 아니라 근본적인 마음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름 열심히 조사를 해서 동네 근처의 심리 상담센터를 예약했다.


여차저차 말이 너무 길어졌는데 벌써 상담은 2회를 진행했고 테스트에 대한 결과도 설명받았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가지고 있던 우울증이라 상담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내가 노력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 후에 생각도 정리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가기 위해.


그렇게 조금씩 나아져서 결국엔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이라는 기준이 애매하지만 그냥 별 탈 없이 아무 사고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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