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문 Nov 03. 2022

키팅 선생과 홀랜드 선생

교사의 이상과 현실 사이 

현재를 즐겨라. 오늘을 붙잡아 얘들아. 비범한 삶을 살아라!


키팅 선생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 Soiety)'는 1990년 개봉되었다. 영화는 미국의 입시 명문고 졸업생 출신 신입 국어교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 제목 중 society라는 단어가 사회라고 번역이 되어있는데 영화 맥락상 '모임'이나 '집단'정도가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키팅 선생이 학창 시절 만들었던 모임 이름이 Dead Poet Soiety 였기 때문이다.(생각난 김에 잘못된 제목 번역이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Saving private Ryan이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소개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private은 일병이 아니고 이병이다)


  오역과 상관없이 이 영화의 제목이 꽤 어울린다. 당시 학생들에게 1990년대의 학교가 시인들(창의성)이 죽어버린(억압받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번역자가 그것까지 고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사의 폭언과 폭행이 다반사였고 입시 교육에 매몰되어 많은 학생들이 자살을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영화 속의 미국 학생들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 같았고 시를 하나의 삶의 태도로 가르치는 키팅 선생의 매력에 푹 빠졌다


키팅 선생에게 문학공부는 입시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며 삶 그 자체였다. 놀란 장면이 두 개 있다. 문학 수업 첫 시간에 시의 유용성에 대한 장들을 찢으라는 장면을 보며 어두운 영화관에서 진짜 교육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이 위에선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키팅 선생이 갑자기 책상 위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한 번 더 놀랐다. 성경책처럼 신성한 책상 위를 구둣발로 올라가다니.  키팅 선생은 물었다.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


"크다는 기분을 알려고요"



"아니야 다음 기회로 모시겠소"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키팅 선생은 진짜 선생은 아니었지만 나를 사범대로 이끈 인물이었다. 멋진 키팅 선생처럼 학생들을 자유롭게,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새천년 키팅의 꿈을 안고 교사가 되었다. 얼마나 키팅의 사생팬이었는지 급훈이 '카르페 디엠'이었고 수업 시간에 한두 번씩 책상을 올라가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라고 말했다.



홀랜드 선생

  키팅 선생과의 달콤한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의 학생들은 키팅의 명민한 제자들이 아니었다.(키팅의 학교는 명문고였다) 무엇보다 내가 키팅이 아니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많은 지역으로 수업 자체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이 다반사였고 학교 폭력, 자퇴 등 학교 외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하루하루였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친한 친구에게 "아무래도 나는 교직이 천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라고 말하였다


  홀랜드 선생을 그때 만났다. 우연히 비디오로 빌려 본 영화의 제목은 홀랜드 오퍼스였다. 영화 속의 교사 홀랜드는 영화 '홀랜드 오퍼스'의 주인공이다. '오퍼스(Opus)'는 (클래식 음악의) 작품이라는 뜻으로 홀랜드 오퍼스는 '홀랜드의 작품'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홀랜드는 음악교사다. 천직이 교사인 키팅과 달리 홀랜드에게 교사는 징검다리의 돌 같은 것이었다. 그는 훌륭한 작곡가가 꿈이었고 경제적 이유로 잠시 교사가 된 것이었다. 여유 있을 줄 알았던 교사의 세계는 실력이 형편없는 아이들, 음악가에게는 맞지 않는 학교 행정 시스템, 많은 수업 시수로 힘들기만 했다. 설상가상 부인은 임신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교사의 삶이었지만 홀랜드는 음악을 통해 희망을 얻고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내면에 변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학교에는 밴드부가 만들어지고 홀랜드는 아이들을 북돋아 주는 존재로 성장한다. 음악가로 성장하기를 바란 아들 콜이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는 절망했지만 이 또한 교사로서 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리고 그는 원치 않게 시작한 30년의 교직생활 동안 작곡가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교단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그의 졸업생들이 그에게 큰 선물을 한다. 바로 그가 만든 교향곡을 다 같이 연주하는 것이다. 그의 지휘 아래서.

https://youtu.be/Nm-6 FCQ5 MyQ


우리가 바로 선생님의 교향곡이고, 멜로디이고, 음표이고, 인생의 음악입니다.



키팅이 나를 교사의 세계에 입문시켰다면 나에게 끊임없이 힘을 불어넣은 것은 홀랜드였다. 탁월하지는 않지만 애정이 깊은 한 평범한 교사가 학생들을 성장시키고 자신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품고 교직 생활을 하다 보면 의미 있는 교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돌이켜 본다. 20년을 잘했을까? 아이들이 나의 교향곡, 멜로디, 음표가 되었을까?  홀랜드처럼 멋지게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격려한다. 10년을 잘 마무리하고 은퇴하자고 말해본다. 그리고 사랑으로 학생들을 보듬었을 수많은 이름 없는 한국의 홀랜드 선생님들에게 충분히 잘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파간다와 우린 안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