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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간암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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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문 Aug 11. 2023

선고

2023년 7월 13일 오후 2시.


 20년간 간염 치료를 받던 나는 평소대로 병원 진료실 앞에 있었다. 큰 대학병원이라 진료시간은 늦춰지기 일쑤여서 그날도 나는 그러려니 기다리고 있었는데 왠일인지 다른 사람보다 일찍 나를 부른다.


"간에서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입원 수속 밟으세요"


의사가 진료 결과를 설명하는 방식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간결하고 핵심만 이야기했다.  


공포스럽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순간 얼어붙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의사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수술은 아니고 시술을 할거에요. 고주파를 이용해서요. 한 달 안에 입원하고 하실 거에요. 혹 한 달 안에 입원이 안되면 다시 저한테 찾아오세요."


처음 설명보다 두 세마디 긴 설명을 했지만 간결함은 여전했다. 


우습게도 던저야 할 모범 질문은 하나도 던지지 못했다. 예를 들어 '종양의 크기는', '종양은 몇 개가 있는 것인지', '심각한 것인지' 등이다. 


예전에 아내에게 의사가 너무 설명이 짧다하니 핀잔을 주며 자기가 질문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며 다음에는 메모지에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 정리하고 질문을 하라고 조언을 해 준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질문도 생각나지 않았다. 메모는 더더욱 소용이 없었다. 적절한 질문은 타고난 순발력과 관련된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나는 젬병이다.


겨우 이어 나간 말은 다음과 같았다.


"제가 지금까지 뭐 잘 못한 것이라도 있나요?"


삶에 대한 질문은 아니었다. 지난 20년간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이 지금의 암을 유발했는지 궁금했다. 다행히 의사도 내가 생각한 쪽으로 이해를 했다.


"아니에요. 뭐 잘못하셔서 암이 생긴 건 아니에요. 암환자 등록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5%만 내시면 됩니다."


시계를 보니 2시 5분이다. 5분만에 나는 국가가 인정하는 5년간의 암환자가 되어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조용히 진찰실을 나와 다시 대기실에 앉아 간호사의 설명을 듣기 위해 기다렸다. 그제서야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아마 시술이니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경과가 나쁘지는 않은 상황일 것이다. 일단 치료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으니 의사도 길게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거지? 정보가 없다. 일단 집에 가면 정보를 찾아봐야겠다.'


"환자분"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입원 수속실 가서 수속 이야기하시면 날짜 잡아주실 거에요. 암 등록은 저희가 했고요. 마지막으로 MRI찍으신 것은 환불액이 있으니까 받아가시고요"


원무과에 가니 MRI 비용 35만원을 환불해주겠다고 한다. 아마 MRI 비용이 암 진단 후로 소급 계산되는 것 같았다. 방법은 병원 예치금으로 전환해 진료비에 사용하는 방식이 있고 환좌 계좌로 환급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예치금으로 넣어달라고 했다. 담당자가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 자신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 아까 의사가 진료 결과 이야기할때도 너무 이것저것 물어보면 의사가 힘들겠다 생각했어. 길게 물어보면 다음 대기자가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가족이 향후 진료비 때문에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나는. 결국 일찍 죽는 건 나일 수 있는데 나는 왜 계속 다른 사람만 걱정하고 있는거지'


"선생님 35만원 제 계좌로 넣어주세요"


버스로 돌아가던 집을 택시를 탔다. 이제 이정도는 해도 되는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뒷 자석에 앉아 바라보는 택시의 풍경은 버스를 탈 때와 같은 풍경이지만 차의 높이 때문인지 더 현실적이고 가까이 와 닿았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게 보며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겼다.


'내가 없으면 아이들과 아내는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미안한 마음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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