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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간암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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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문 Aug 14. 2023

누구에게 말을 해야할까

택시를 타고 오면서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알리지 말아야 할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늙으신 어머니다. 어머니는 식도암 환자인 아버지의 병수발을 드느라 고생을 하셨다. 암이 주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초기임이든 말기암이든 내가 이야기를 하면 매일 근심 걱정으로 지내실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에게는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겨야 겠다. 크게 아플 상황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면 좋겠다. 변변한 효도를 못했는데 불효를 하면 안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알려야 할 것인지가 고민이 되었다. 이제 중2, 고2 인 아들들이 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숨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회 공동체에는 알려야 할까? 기도부탁 때문에 알리는 것이 될 것인데 좀 주저하게 되었다.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내가 환우들의 기도에 깊이 동참하지 못했는데 내 기도를 부탁한다는 것이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으면 정말 하나님께 실망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대부분 환우들을 위한 기도에서 기적이 일어난 적이 없고 결국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보다 더 깊었다. 일단 알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현재 몸이 아픈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알리지 않았을 때 서운해 할 친구 둘이 떠올랐다. 이 친구들에게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고동락하고 삶의 어떤 부분들은 의지하고 위로하고 살았었다. 지금은 서로 가정을 꾸려 각자의 삶을 살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 다시 연결된 삶으로 같이 하고 싶은 친구들이다. 


당연히 알려야 할 사람은 아내다. 아내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아마 내가 병 이야기를 하면 한 걱정 할 것이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다. 혼자 헤쳐나가기에는 큰 병이다. 예전에 나는 내 병이 아내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결혼하고 한 3번 다른 일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병이 아주 큰 것이 아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내가 아파서 아내가 수발드느라 고생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항상 입원도 혼자하고 병실도 혼자 있다가 퇴웡을 했었다. 어머니가 하셨던 일을 아내에게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병은 알리고 의논할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아내가 오늘 병원에서 어땠냐고 물어본다. 20여년간 일상적인 질문이었고 '괜찮다고 그래"라는 일상적인 대답이었다. 내가 "암이 발견되었고 이번 달 안에 시술을 해야 한대"라고 하니 좀 놀란듯 하다가 "괜찮을거야 간단한 시술이니까"라고 말하였다. 아내가 의외로 침착해 다행이다 싶었다.


밤 늦은 시간 거실에서 tv를 보다 안방을 열어보니 아내가 펑펑 울고 있었다. 아까와 달리 병이 우리 삶에 미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 것 같다. 아내의 삶에서 내가 없을 수 있다는 것에 큰 슬픔이 밀려온 것 같았다. 나 없이 지내야 할 수도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내 슬픔을 표현할 틈이 없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내를 안아주며 너무 걱정말라고 달랬다. 한 30분을 그렇게 서로 부둥켜 안고 위로를 해 준 것 같다. 


30분정도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달래주다 보니 아내의 슬픔이 전이되었다. 몇 년후 내가 없을 수 있다는 상상이 묵직하게 심장을 때렸다. 참았던 슬픔이 쏟아져내리고 난 주저앉아 아내 품에 안겨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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