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주는 ‘어색함’

by 안선화


파워 E에게도 ‘낯 설음’은 존재한다.

13년의 세월동안 나는 없었다. 그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살아왔던 그 시간들이 갑자기 아깝게 느껴졌던 건, 일상 속 작은 사건들의 묶음 때문이었다.


“하아…….”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첫마디는 늘 한숨이다.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13살인 큰 아들은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11살 둘째 딸은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다. 내 손길이 필요하던 어린아이들이 부쩍 자라 이젠 내 손길이 귀찮다고 한다.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대답이 돌아 올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이 또 야속하고 서운해서 나도 아이들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다. 그 뒤로 우리는 서로에게 비수를 꽂고 또 꽂는다. 마치 오징어 게임처럼 마지막에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또는 아이들 각자의 방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힐 때까지. 그래서 결심했다.

“이젠 나도 나를 찾아야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 다 내 잘못이었다. 내려놓지 못해 붙잡고 있었던 가정과 육아를 나의 경력단절의 이유로 들며 우울함을 극대화 시켰던 것. 그 두 가지를 담아 낼 수 없었던 내 작은 그릇. 나의 청춘을 쏟아 부어 키워 낸 작고 소중한 내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감. 그 이후에 오는 상실감 또는 실망감. 어떤 말을 써도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이 자꾸만 솟구쳤다. 마흔 두 살에 큰 아들 못지않은 사춘기가 온 것일까. 아니면 일찌감치 갱년기가 찾아온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기가 취미인 나에게 ‘생각’하는 시간은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부딪히고 깨져도 용기 있던 젊음이 사라지고 난 뒤 늘그막에 시작된 자아 찾기, 그 실행의 시작은 참으로 낯설었다.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일자리를 하나 마련해달라고 했다. 평소 나를 좋게 보던 언니는 반색을 하며 적극적으로 응원했고 곧 바로 본인 사무실에서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다. 평소 외향적인 성향이 강한 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에 “좋아!”를 외치며 호기롭게 교육을 들으러 갔다. 일종의 신입생 교육. 이것은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이 집단에 들어오기 위해 견뎌야 할 ‘낯설음’, '배움'. 나는 결혼 전에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던 학원 강사였고 프리랜서 사보 기획자였다. 그 이외에 다른 회사를 다녀본 적은 없다. 십 여 년 넘게 경력이 단절되었던 아줌마가 전혀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마흔이 넘어 뛰어든 세상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낯가림도 없는 내가 어깨를 구부리고 손가락으로 빈 책상을 두드리며 어색함을 표현했다. 그래도 내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들 제각기 맡은 일을 하느라 바쁠 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면서도 사회초년생처럼 나에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것에 어찌할 바를 몰라 내 귀와 볼은 이내 발그레해졌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멀쩡하던 얼굴이 어찌나 뜨거운지. 언니는 이런 나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바쁜 와중에도 나를 챙겨주려 애썼다. 어른답지 못하게 얼마나 티를 냈으면 업무를 보는 틈틈이 내 어색함을 깨주려 노력했을까. 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할 일을 찾아 나서고 시키지도 않은 서류를 정리하며 아줌마 특유의 노련함으로 대처했다. 여기서 노련함이란 더러워지면 바로바로 치우는 정리정돈 정도라고 정의해야 맞겠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만 먹었을 뿐, 나는 다시 첫발을 내딛은 어린 시절 이십 대와 다를 바가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처음이 주는 어색함을 받아들이니 낯섦 또한 즐거웠다. 그렇게 다 지나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게다가 이 시간에도 내게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백중에 십을 덜어냈으니 내일은 이십을 덜어내 보자, 라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된 나의 사회생활을 응원하기로 했다. 파워 E의 낯섦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색함이 아닌 기대감으로 마음을 바꾸고 나니 용기가 솟아났다. 호랑이 기운보다 강력한 경력단절의 무서움. 그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다른 말로 나를 다독이고 있다. 구부러졌던 어깨는 내일을 향해 다시금 펼쳐지며 나의 내일을 맞이한다. 오늘의 낯섦을 내려놓으며.

작가의 이전글부모님의 결혼기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