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다 보니 다양한 위스키를 근처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운 좋게도 위스키에 관심이 많은 지인 덕분에 여러 지역과 종류의 위스키를 조금씩 맛볼 기회가 생겼다. 오늘은 스카치위스키 전반에서 시작해 최근 흥미를 느낀 스카치 아일러(Islay) 위스키, 그중에서도 가장 기분 좋게 마셨던 위스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위스키의 어원은 게일어에서 나온 '생명의 물(Water of Life)'에서 유래했다.
이 '생명의 물'인 위스키는 지역에 따라 철자가 다르게 쓰인다.
스코틀랜드, 캐나다, 일본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철자인 'Whisky'를 사용하며,
아일랜드와 미국에서는 'e'를 추가한 'Whiskey'로 표기한다.
이는 18세기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며 공통된 철자를 사용하게 된 영향이라고 한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의 본고장으로, 지역별로 다양한 맛과 개성을 지닌 위스키를 생산한다. 각 증류소는 보리, 물, 기후 등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주요 위스키 생산지는 다음과 같다.
스페이사이드(Speyside)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위스키 증류소가 밀집된 지역으로, 비옥한 계곡과 스페이 강(River Spey)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하일랜드 내에 위치하지만 독자적인 지역으로 구분되며, 피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달콤하고 과일향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사과, 배, 꿀, 바닐라, 향신료 등의 풍미가 조화를 이루며, 주로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된다.
로랜드(Lowland)
부드럽고 섬세한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트리플 디스틸레이션(삼중 증류) 방식을 사용하는 증류소가 많다.
가벼우면서도 우아한 맛을 지니며, 풀잎, 인동덩굴, 크림, 생강, 토피, 토스트, 시나몬 등의 향이 어우러진다.
바디감이 가벼워 식전주로 즐기기 좋다.
하일랜드(Highland)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넓은 위스키 생산 지역으로, 매우 다양한 스타일의 위스키가 존재한다.
부드럽고 꿀 향이 나는 위스키부터, 짭짤한 해안가 몰트, 강하고 스파이시한 위스키까지 폭넓은 개성을 가진 위스키가 많다.
캠벨타운(Campbeltown)
한때 '위스키의 수도'로 불렸던 지역이지만, 현재는 소수의 증류소만 남아 있다.
짭짤한 바다 향, 스모키 한 풍미, 과일, 바닐라, 토피 노트가 조화를 이룬다.
대체로 진하고 묵직한(characterful and robust)한 스타일이 많다.
아일러섬(Islay)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위치한 섬으로, 캠벨타운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다. 약 3천 명의 주민 대다수가 위스키 생산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위스키와 밀접한 곳이다. 대서양의 거친 바다에 면해 있어 바람이 세고 기후가 거친 지역이다.
강렬한 피트 향(heavily peated)과 스모키 한 맛으로 유명하며, 불타오르는 듯한 독특하고 강렬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스카치위스키의 공식 기준
참고로, 스카치위스키라 공식적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숙성될 것
생산과 숙성 모두 스코틀랜드에서 이루어질 것
싱글몰트위스키는 100% 맥아보리(malted barley)로만 만들어질 것
(출처: Scotch Whisky The Experience)
(한국어 표기 관련) Islay 섬의 한국어 표기를 살펴보면 각 기사와 매거진마다 '아일라', '아일레이', '아일러' 등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다만 국립국어원의 규정용례를 살펴보니 표준 표기는 '아일러섬'이다. 비록 국내 위스키 애호가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표기는 아닐 수 있지만, 본 글에서는 국립국어원 표기를 따르기로 했다. 또한 현지 발음도 '아일러'가 가장 유사하다.(‘eye-luh’)
아일러 섬은 강렬하고 독특한 맛으로 전 세계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지역이다. 14세기,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이곳의 풍부한 보리 생산성과 이탄 자원을 발견한 후 위스키 증류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아일러 위스키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아일러 위스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피트(이탄) 향이다. 위스키를 증류할 때 원료인 맥아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피트를 태우는데, 이 연기가 스모키하고 강렬한 풍미를 더한다.
피트 향은 사람에 따라 소독약이나 수술방 냄새로 느껴지기도 하고, 흙, 재, 훈제 연어와 같은 향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바다의 영향을 받아 짭짤한 소금기와 해조류 같은 해양 풍미도 느껴지는 것도 특징이다.
대부분의 아일러 위스키는 높은 알코올 도수를 가지며, 비냉각 여과 방식으로 더욱 진한 맛을 강조한다.
이 지역에서 탄생한 유명한 위스키 증류소는 8가지가 있다.
라프로익(Laphroaig), 라가불린(Lagavulin), 보모어(Bowmore), 아드벡(Ardbeg), 브룩라디(Bruichladdich), 부나하벤(Bunnahabhain), 쿨일라/쿠일라(Caol Ila), 킬호만(Kilchoman)
라프로익(Laphroig)
1800년부터 이어진 200년 역사의 증류소로, 미국산 버번 캐스크(American bourbon casks)와 스페인산 셰리통에서 숙성된다.
라가불린(Lagavulin)
1816년에 설립된 아일러의 대표적 증류소로, 깊고 풍부한 피트 향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증류 방식을 고수하며, 긴 숙성 과정을 거쳐 균형 잡힌 달콤함과 스모키 한 풍미를 자랑한다.
라가불린 16년 산: 강한 피트 향과 해염 풍미, 달콤한 드라이 과일 향이 조화를 이룬다.
디스틸러스 에디션(Distillers Edition): 16년 숙성 후 페드로 히메네스 셰리 캐스크에서 추가 숙성해 더욱 깊고 달콤한 풍미를 선사한다.
보모어(Bowmore)
아일러섬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 중 하나로, 인구 3분의 1이 거주하는 보모어 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보르도 레드와인(클라렛) 캐스크, 마데이라 와인 캐스크 등 다양한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체리/블랙커런트/삼나무 향, 과일 향/향신료 등 각 캐스크에 따라 다른 풍미가 더해진다.
아드벡(Ardbeg)
아일러에서 가장 유명한 증류소 중 하나로 1815년에 설립된 아일러섬 남단의 증류소다. 가장 피트 향이 강하고 존재감이 강한 위스키 생산한다.
아드벡 10년 산: 대표적 제품으로 강한 피트향에 라임과 바닐라 풍미가 조화를 이룬다.
우이게다일(Uigeadail): 셰리 캐스크 숙성을 거쳐 달콤하면서도 스모키 한 풍미가 돋보인다.
코리브리레칸(Corryvreckan): 높은 알코올 도수와 강렬하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브룩라디(Bruichladdich)
1881년 설립된 증류소로, 한때 폐허가 되었으나 2001년 다시 부활했다.
부나하벤(Bunnahabhain)
아일러섬 북부 포트 아스카이그(Port Askaig) 쪽에 위치하며, '강의 어귀'라는 의미를 가진다. 아일러 위스키 중 비교적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는데, 석회암을 통과한 물을 파이프라인을 통해 증류소로 운반하며 숙성 과정에서 피트 향을 거의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일러 위스키 중 피트 향이 적은 편이라 비교적 마시기 편하다.
쿨일라/콜일라(Caol Ila)
아일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증류소로 대규모 위스키 생산 과정을 볼 수 있으며, 빠르게 흐르는 바다를 배경으로 주라 섬을 마주하고 있다. 묵직한 몰트의 풍미와 피트, 요오드 향이 균형을 이룬다.
킬호만(Kilchoman)
2005년 설립된 가장 최근의 증류소이지만,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맥아를 싹 틔우며 위스키를 생산한다.
(출처: Wild about Argyll & The Isles)
아일러 위스키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라가불린과 아드벡이었다.
라가불린 16년 산은 아일러 위스키임에도 향이 가벼운 편이지만,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첫맛은 우아하게 시작되며, 이어지는 묵직한 피트향과 은은한 꿀 향, 드라이한 과일 향이 조화를 이룬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해 매일 홀짝이기에도 좋을 것 같다. 아일러 중 하나만 구입해야 한다면 라가불린으로 갈 듯하다.
아드벡은 정말 개성 있고 강하며, 복잡한 맛이 인상적이다. 첫맛에서는 강렬한 피트향과 스모키 함이 몰려오지만, 이후 캐러멜, 바닐라, 아니스 등의 풍미가 뒤따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캐러멜 향이 더욱 강조되며, 마실수록 흥미로운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라프로익과 함께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 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까지 은근하게 손이 갔던 위스키다.
최근 한국에서도 다양한 위스키를 접할 수 있다고 들었다. 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스키 중 하나인 발렌타인은 위 스코틀랜드 위스키 생산 지역 중 4곳 (하이랜드, 로우랜드, 스페이사이드, 아일러)의 맥아(malts)를 블렌딩해 만든다. 싱글몰트 위스키 중 인기 있는 발베니(Balvenie)는 스페이사이드 지역 대표 주자다. 특유의 강한 개성 덕분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마니아층은 확실히 있을 아일러 위스키. 한국에서도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